[칼럼] 누구를 의식하며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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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담임)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성경의 마태복음 6장 1-18절은 신자들이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하는데 있어서 가져야 할 근본적인 내적 태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이런 일들을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 앞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구제와 기도와 금식하는 자들을 가리켜 “외식하는 자”라고 부르십니다. 이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만 실제로 행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가 “보이는 것”과 “보여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런던에 가면 길거리에 특이한 공중화장실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이 특이한 이유는 밖에서는 화장실 내부가 보이지 않지만,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면 밖이 훤히 보인다는 것입니다. 화장실이 대로변에 있어서 지나가는 행인들이 많기 때문에, 옷을 벗고 일을 보면서 사람들이 바로 코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밖에서 안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어지간한 배짱이 아니면 이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우리가 보는 것”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보는 만큼 그들도 나를 볼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 안을 볼 수도 없고, 대부분은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의식도 못하며 스쳐 지나가는데, 화장실 안에 있는 나는 그들을 보고 의식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이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납니다. 6:6절 앞부분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라고 합니다. “은밀한 중에 계신다”는 말은 “감추어진” 또는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보이지 않게” 계십니다. 그런데 6절 뒷부분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도 모르게 “골방”에 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앞에 말한 런던의 공중 화장실에서는, “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대해서는, “나는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나를 보실 수 있으며 또 보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진리라면, 우리가 누구를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곧 우리 눈에 보이지만 우리를 볼 수도 없고 상관도 없는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나를 보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영적으로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이 타락은 단지 술을 많이 마시고 음란한 짓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지 않고, “보이는 썩어질 것들”을 추구하고 이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뛰어난 과학 기술 문명은 “보이는 것”으로는 사람들에게 큰 자랑이겠지만, “영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0절은 분명히 경고합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우리가 보이는 것에 눈멀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에 눈 뜨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각자가 “영적인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매일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고,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기를 기도합니다. 매일 그렇게 영적으로 깊어지고, 지혜로워지고, 강해져서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더 잘 보이는 우리 각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