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노멀보다 필요한 것

1531

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 교회 담임)

 

아이들이 어릴 때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뉴저지에서 북쪽으로 운전해서 약 7-8시간이 소요된다. 세 살, 다섯 살 아이들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이었다. 아무리 책을 읽게 하고 비디오를 틀어주어도 소용없었다. 2시간쯤 지났을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같은 질문이 뒷좌석에서 지겹도록 들려왔다. “Are we there yet?” 그 때마다 대답 또한 같았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요즘 다들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아직 멀었는가? 거의 다 왔는가? 코로나 사태는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가? 어떤 이들은 말한다. 거의 다 왔다고. 여름 전이면 끝날 것이라고. 반면, 어떤 이들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하버드대 T.H.챈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지 않으면 2022년까지 간헐적으로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해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상반되고 다양한 분석들 속에서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Are we there yet?

같은 질문을 던졌던 이들이 성경 시대에도 있었다. 바벨론 포로기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 유배지에서의 생활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질문은 깊어졌다. 아직 멀었는가? 우리는 원래의 삶의 자리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많은 이들이 곧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의 예언은 달랐다. 쉽게 돌아갈 생각하지 말라.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텃밭을 만들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아 기르라. 다시 말해, 예루살렘에서의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접고, 바벨론에서의 뉴노멀을 준비하라.

지금 우리의 질문은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언제 돌아갈 것인가’가 아니다.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이다. 단순히 온라인 예배와 줌(ZOOM) 미팅 같은 변화에 익숙해지라는 의미만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가 드러낸 이 세계의 민낯을 마주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인간의 욕망을 무한 긍정하는 현대 자본주의 질서와 이에 따른 계층 간 불평등, 인종주의, 환경 오염의 심각성이 폭로된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타국에서의 유배 생활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연히 변화시켰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그들은 여전히 교만했고 여전히 위선적이었다. 하여, 에스겔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새 영과 새 마음’이라고 말한다(겔36:26). 새로운 마음 없이 새로운 일상은 없다는 말일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우리를 자동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 건 역시 착각이다. 삶의 방식과 패턴은 분명 바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탐욕과 이기심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더 높아지려는 욕망, 돈과 권력을 향한 집착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여, 새 마음 없이 새 일상은 없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날 것인가는 누구도 모른다. 확실한 것이 하나 있다면, 새 마음 없이 맞이하는 뉴노멀은 다시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새 마음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일이다. 무한 경쟁의 삶에서 무한 사랑의 삶으로의 전환이다. 사람과 자연을 사용하지 말고 사랑하는 일이다. 우리가 맞이할 세상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세상이 와도 변하지 않은 건 사랑의 힘이다. 그러니 우리 서로 사랑하자. 그것이 뉴노멀을 살아갈 우리가 품어야 할 새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