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다시 벧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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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 교회 담임)

 

신학생 시절, 채플 뒤쪽에 작은 기도실이 있었다. 일과를 마친 후 기숙사에서 나와 채플 기도실로 올라갈 때면 괜히 마음이 비장해지곤 했다. 그 어두운 기도실엔 언제나 기도하는 신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 소리에 힘입어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를 목놓아 부르던 기억이 새롭다. 군복무 시절에 드린 예배도 소중한 추억이자 축복이다. 초코파이 받으러 온 훈련병들은 어김없이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를 올렸다. ‘주 예수와 동행하니 훈련소도 하늘나라’라며 흐느껴 찬송하던 그들과의 예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예배경험이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런 기억의 자리가 있다. 야곱에겐 벧엘이 그런 곳이었으리라.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해 도망가다가 이름모를 낯선 땅에서 돌베게 베고 자던 밤, 야곱은 꿈에 하나님을 만난다. 거기 하나님이 계심을 깨달은 야곱은 돌베개로 단을 쌓고 예배하며 그곳을 벧엘(‘하나님의 집’)이라 이름한다. 특정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그곳이 성소임을 알고 예배하며 사는 것, 그것이 벧엘신앙이다.

불행하게도 훗날 이 벧엘은 북이스라엘의 타락의 중심이 된다. 백성들이 남유다 지역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을 시기한 여로보암은 벧엘에 금송아지 제단을 만들고 거기서 예배하게 한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를 비판하자 벧엘 제사장은 그에게 남유다로 돌아가라며 이렇게 말한다.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나라의 궁궐임이니라.”(암7:12-13). 하나님의 집을 왕의 성소로 만들어버린, 벧엘의 타락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온라인 예배로 대체하고 있다. 물론 ‘전쟁 때도 예배는 드렸다’면서 계속 모여서 공예배를 드리는 교회들도 있다. 이를 둘러싸고 때아닌 예배 논쟁이 벌어졌다. 온라인 예배가 과연 공예배를 대체할 수 있는가? 교회는 사회에 해를 끼칠 위험을 무릅쓰고도 예배해야 하는가? 만일 이런 상황이 이민교회에도 일어난다면, 우리는 각자 집에서 잘 예배할 수 있을까? 예배 시간 늦지 않게, 스크린 앞에 가족들이 모여, 제대로 옷 갖춰입고 예배드리게 될까? 기도는 누가 어떻게 하며, 설교는 어떻게 할까? 목사가 없으니 건너뛰거나 ‘약식’으로 할까?

이번 사태로 한 가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우리가 얼마나 예배당 건물 중심의 예배와 목회자 의존적 신앙생활을 했는지 하는 것이다. 예배당과 목사가 없으면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너무 많다. 좋은 음향과 영상 시설, 편안한 의자, 넓은 주차장, 훌륭한 교육 공간, 전문적인 사역자들이 사라졌을 때 우리의 예배는, 아니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길바닥의 영성을 잃은 벧엘이 어떻게 타락했는지 성경은 생생하게 기록한다. 가난한 마음 없이 예배만 드리는 종교는 반드시 타락한다. 다시 벧엘로 올라갈 때다. 여로보암의 벧엘이 아니라 야곱의 벧엘로,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날 밤 그 간절한 기도의 자리로, 첫 아기 받아 들고 드렸던 그 감격으로, ‘이번 학기 등록금만’ 하며 드리던 그 애절한 간구로, 영주권 없는 불안함을 기도로 채우던 그 간절함으로, ‘이 병만 낫게 해 주시면’ ‘이번만 도와주시면’ 하면서 하나님께 드렸던 그 서원과 약속으로, 천막 치고 예배드리면서도 감사했던 그 시절의 가난한 예배로, 청년 시절 그 뜨겁고 순수했던 믿음의 열정과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던 정의로움으로. 자, 다시 벧엘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