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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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회 최순봉회장

최순봉(시카고 한미상록회장)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살아온 과거를 뒤돌아보면 언제나 두 얼굴이 나를 혼란에 빠뜨린다. 영광의 사건을 만지작거리다 어슴푸레 나타나는 부끄러움이 영광을 가리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떠올리다 이기적이고 열정과 욕정을 분별 못한 젊은 시절이 미래의 상상까지 어긋나게 하고 만다. 부끄러움에 홀로 낯을 붉히다, 그래도, 그렇지만, 그런데, 하고 스스로의 합리화로 부끄러움을 감싸고 있는 철면피한 또 다른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 얼굴이 내 자신임을 깨닫고 보면, 이런 것들이 사람 사는 모습이라면 사람이 정말 싫어진다.

배부른 호랑이가 식곤증을 즐길 때 토끼가 수염을 뽑아도 죽이지 않는다는데 사람은 배부르게 먹고 남는 것은 냉장고에 넣어두고 썩혀, 버리는 음식이 적지 않다. 하지만 먹고 남을 것을 미리 신경을 쓰고 절약하여 부족한 사람과 나누기를 게을리 한다. 언젠가 언급한 사실이지만 전염병에 걸린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먼저 잡아먹음으로 육식동물의 멸종위기를 막아준다. 물론 생태사슬의 섭리로서 하느님이 세우신 질서인데 초식동물의 전염병균이 육식동물에게는 발병하지 못하기 때문일 게다. 암튼 사람은 육식동물도 초식동물도 아닌 잡식동물이라 인수공동체라는 전염병 병균이 있어 제일 조심해야 하는 만큼 병균의 공격을 방어하는 지혜도 출중하다.

이런 사실들이 사람의 삶을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원흉들이다. 따지고 보면 복잡하다는 그 자체가 지혜의 소산이다. 모는 생명체가 죽고 산다는 것은 본능의 반응인데 그 중에서 사람은 본능과 지혜가 동시에 반응 한다. 지혜란 생각이 낳은 가장 아름다운 얼굴인 셈이다. 이 말은 음흉한 생각은 지혜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생각은 두 얼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천(千)면의 얼굴을 들어 낼 때가 많아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여기서는 두 얼굴도 감당이 버거워 두 개의 얼굴만 감상하는 중이다.

별 보잘 것 없는 내 삶의 자취만을 들춰보아도 정상적인 사고(思考)속에 비정상이란 사생아가 언제나 어디서 불쑥불쑥 따라 다니며 형상화 한다. 그 중에서 미천한 생각이 이웃에 도움을 준 결과가 나타나면 아름답게 보이고 지혜로웠다는 자평을 하게 되지만, 자기만족에 얽매인 행위였을 때는 그때를 다시 뒤돌아보아도 음흉하기 일쑤였다. 나는 아직도 부족한 가운데서 깨달아가는 삶이지만 지나온 삶의 교훈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미련타 할 정도의 부지런함과 진실함과 솔직함은 지혜의 어머니였다.

그러나 나태하면서 자기 이익에 고심하는 순간순간마다 음모술수가 난무하는 비정상이란 사생아를 분만해 놓았다. 하지만 이는 진리는 아니었다. 삶은 변화의 연속이고 변화는 사람의 의지적인 것보다 자연적이기에 자연을 따르는 부지런함, 자연을 청종하는 진실함, 자신을 인정하는 솔직함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의 요소였는지, 하고 어렴풋이 느낄 때가 많다. 이런 느낌에 빠져 허우적 거리다가 돌연변이란 암벽 같은 현실에 짓눌리고 나서야 나약하고 나약한 내 자신이 부끄럽고 심지어 어떤 것이 자연적이며 어떤 것이 인위적인지도 분간이 어려워진 나를 발견한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상호 불신이란 원인이 도사리고 있고 이기적 욕망에 지배당하고 있고 절대적 자아(自我)에 도취되어 있음도 발견한다. 세상이 이렇게 변질되면 천륜도 사라진다. 자식도 형제도 무용하다. 그리고 이 최후의 모습이 정의가 실종된 오늘 날의 사회상이다. 또한 요즈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나 우리가 떠나온 모국에서나 하나같이 선거열풍이다. 그들 정치인들의 논쟁을 듣고 보노라면 절대적 자아도취와 상호불신과 개인과 집단이기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한국의 모 정치인이란 사람은 자신의 주장대로 술에 취한 망언이라 해도 술에 취해 망언을 했는데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단다. 그래서 요즈음은 소도 개도 웃는다.

우리가 사는 미국은 어떠한가! 트럼프인지 트럼펫(나팔)인지 하는 사람은 인종차별주의요, 종교차별주의요, 성 차별주의요, 전쟁광으로 비춰지는 그가 대세론을 타고 있으니 미국도 옛 미국이 아니라 슬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