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르다야, 마르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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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마르다는 예수님과 그 일행을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주님께서 초대에 응해주셨을 때, 마르다는 뛸 듯이 기뻤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 기쁨을 싹 잃어버리고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번째 이유는 자기가 뭘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까맣게 잊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일의 동기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만 겁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서 마음이 분주했고, 그 분주함 때문에 자신이 누굴 위해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까맣게 잊고 만 겁니다. 그녀의 행동이 이 사실을 증명합니다. 먼저 마르다는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본문의 나아간다는 동사는 아주 급하고 공격적으로 접근하는 동작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예수님께 다가가는 마르다의 발걸음이 찬바람이 쌩하고 불 정도로 거친 겁니다. 마르다의 쌀쌀한 행동은 여기서 그치질 않습니다. 말로도 주님을 공격합니다. 자기는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주님 앞에 앉아 있는 동생 마리아를 그냥 놔두시고 오히려 한가하게 대화를 나누고 계신 모습을 보고 참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질책하듯이 주님께 따졌습니다. 지금 마르다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까맣게 잊고 만 겁니다. 말라기 1장에서 하나님께선 누가 성전의 문을 닫아주면 참 좋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빠진 제사를 더는 받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교회 사역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음인 겁니다. 성도는 하나님 사랑이라는 동기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목적 위에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쁨을 잃어버린 두번째 이유는 동생 마리아의 행동을 보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는 이유는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르다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 볼까요? 주님을 초대한 마르다는 주님과 제자들에게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드리는 것이 최고의 접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바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동생 마리아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함께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자기 뜻 대로 행동하질 않는 겁니다. 예수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겁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마르다는 뚜껑이 열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찬바람이 쌩 불도록 주님께 나아가, 동생을 붙잡아 두고 있는 주님께 따진 겁니다. 주님께 쏟아 놓은 마르다의 말을 헬라어 문법을 적용해 살펴보면, 자기 생각이 다 맞으니 주님은 그저 자기 말에 동의만 해주면 된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을 처음 모실 때의 기쁨을 다 잃어버리고, 지금은 주님 앞에서 섭섭함과 분노가 섞인 부정적 감정을 폭발하고 있는 겁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부르시면서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네가 많은 일로 인해 염려로 가득하구나. 지금 너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또는 주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스스로 결정한 그 일에 집중하라는 겁니다. 마르다는 음식 대접을 택했으니, 자기가 만든 음식을 드시며 흡족해 하실 주님을 생각하면서 음식 만드는 일에 온 정성을 쏟으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또한 동생이 무엇을 하고 있든 관계없이, 마르다의 영혼은 기쁨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과 기쁨으로 만든 음식을 드실 때 주님도 기뻐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마르다가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 대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면,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교제하는 것이 더 좋은 접대 방법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니 마르다는 마리아가 자신의 선택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한 자신이 음식 만드는 일을 감당하기 때문에 동생이 마음 놓고 주님과 교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성도는 은사를 따라 맡게 된 자신의 사역에 집중하고, 동시에 다른 식구들의 은사와 사역을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는 서로 다른 멤버들이 하모니를 이루어 주님께 영광 돌리는 곳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