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리아의 향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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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십자가 죽음을 이틀 앞두고 예수님은 시몬의 집에 초대를 받습니다. 이 자리에서 마리아는 주님께 아주 귀한 향유를 부어드립니다. 이 사건은 예배의 태도에 대한 소중한 교훈을 줍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부어드린 향유는 300 데니리온, 즉 한 성인이 일년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그런 큰 돈을 지불해야 살 수 있는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죽었던 오빠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신 주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 향유는 마리아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 최대의 예물이었을 겁니다. 자기 소유물 중 더 귀한 것이 있었다면, 그걸 주님께 드렸을 겁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통해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있는 겁니다.

갈멜산에서 이방 선지자들과 전투를 치를 때,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너희들이 어느 때까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라고 외치며 도전합니다. 그런 후 자기가 하늘에서 불을 구할 차례가 되자, 먼저 이스라엘 지파를 상징하는 열 두 개의 돌로 무너진 단을 다시 쌓게 합니다. 그 위에 제물을 얹은 후, 백성들에게 열 두 통의 물을 붓게 합니다. 번제물에 물을 붓는 것은 엘리야의 믿음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 앞에 선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 당시 자기들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물을 드렸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은 상황에서 한 통 한 통의 물은 그야말로 그들에겐 생명과도 같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나 엘리야나 열 두 통의 물을 통해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 겁니다. 머뭇거리던 자신을 100% 하나님께 드리며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선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린 백성들의 예배를 기뻐받으셨고, 그 증거로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드려야 할 영적 예배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자기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 마리아는 우리의 예배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를 부어드렸을 때, 주님의 제자들은 향유의 가격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향유를 300 데나리온에 팔아 그 돈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더 가치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넌 지금 큰 돈을 허비하고 말았어.” 조용히 지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격하게 화를 내었고, 마리아를 호되게 꾸짖었습니다. 책망하다라는 단어는 콧구멍에서 불이 날 정도로 화가 나서 질책한다는 뜻입니다. 이성을 잃은 제자들은 자기들이 지금 주님의 격을 낮추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합니다. 헛된 지출이라고 말함으로, 주님을 300데나리온의 섬김을 받기에도 부족한 분으로 격하시킨 겁니다. 마리아는 제자들의 격하고 지나친 질책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왜 침묵했을까요? 마리아는 자기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예배를 주님께 드린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겁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오해해도 괜찮은 겁니다. 주님만 자기 마음을 알아주시고 받아주시면 그만인 겁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마음과 예배를 기쁨으로 받으신 주님께서 마리아를 변호해주셨습니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리아는 주님의 이 한 마디 말씀으로 인해 터질 것같이 기뻤을 겁니다. “제가 드린 예배를 기쁨으로 받아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친밀한 영적 교제인 겁니다. 따라서 예배의 조건과 환경으로 인해 하나님께 드리는 내 마음이 흔들려선 안 되는 겁니다. 예배드리는 성도들 모두가 하나님과 일대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예배드릴 때, 공동체 전체 또한 은혜와 감동으로 가득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배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참예배를 드리게 되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