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음의 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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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The first duty of love is to listen.” – Paul Tillich

때아닌 탁구 치는 소리가 온 집안에 가득합니다. 주 정부의 “stay-at-home ” 명령으로 인해 온 식구가집안에 갇혀있으면서 찾아낸집안에서의유일한 엔터테인먼트가 탁구가 되었습니다. 밥먹는 식탁의중앙에 탁상용 달력을 여러개 세워놓았더니 근사한 탁구대로 변했습니다. 이제 어느 때는 아침부터, 때로는 저녁밥을 먹은 후에도 이곳에서 가족대항 탁구토너먼트가 종종 열립니다. 오늘은 누가 설겆이 맡을 것인 지, 집안의 청소는 누가 할 건 지, 누가 강아지를 데리고 공원에 다녀올 지,… 등수에 따라 정해질 집안 일들을 생각하며 양보없는 치열한 경기를 펼칩니다.우리끼리 농담으로“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올림픽에 가족 탁구팀으로 출전해도 되겠다”고 스스로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그렇지만 탁구대앞에서 나누는 대화가 유쾌한 것만은 아닙니다. 대학생활을 위해 4년간집을 떠나 있있던 아들이 아버지와의탁구시합을 빌어 그동안 품고 있던 수-많-은 불만을 쏟아놓습니다 – 아버지는 왜 그렇게 일방적이냐, 엄마에게 왜 그토록 무심하냐, 좀 따뜻할 순 없냐,… 등등- 아들의 끊없이 이어지는 긴 설교에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하여 저도몰래 속상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렇지! 성공적인 대화는 언제나 ‘눈높이를 맞추며’ 나눠야 하는 건데!” 라며 뒤늦은 회회가 맘속에 찾아왔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아들과의 대화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헤어져 있던 세월만큼이나 아들의 대학 4년은 그의 성장과 변화의 기간이었습니다.가정의 좁은 테두리를 벗어나, 이젠 멋진 성인으로 사회와 세계를 보는 스스로의 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손상된 자존심에속상해 하는 아버지를 향해 아들이 이같이 말을 건냅니다 –  “아빠 너무 속상해 하지마, 이걸 ‘탁구외교’(ping pong diplomacy)라고 하는 거야!”

아침 큐티시간을 위해 신명기의 말씀을 읽으면서, 왜 그토록 모세는 하나님과의 성공적인 관계를 위해선 “너는 마음에 할례를 받고,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10:16)라고 하였을까 곰곰히 그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속에 진실과 겸손이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성공적인 관계를 이루기 위해선 이같은 자세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할례의식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특별한 관계를상징했던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갓난 사내아이가 태어난지 8일만에 그의 살을 잘라내는 종교의식 였습니다. 이와같이 마음의 할례란 외식을 벗겨내고 진실된 속 마음을회복하는 것을의미합니다.신명기의 청중은 모세의 고별설교를 듣던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들 이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실패한 조상들과 같이 하나님께 거역하는 불순종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조상들은스스로를 향해교만과 자존심에 취해 그들의 목이 뻗뻗히 굳어버렸던 사람들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짧은 인생경험과 스스로의 좁은 식견을 가지고 마치 모든 인생을 다 아는냥 일찍이 스스로 선생이 되어 그 생각이 단단히 굳어 버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향해선 언제나 장황히 설교를 쏟아 내면서도, 자신을 향해 들려주는 누군가의 사랑어린 설교엔 좀처럼 맘을 열지 않는 막혀진 귀와 뻣뻣한 목을 가진 교만함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Pseudo-listening이라는 장애가 있습니다. 듣고는 있지만 실상은 듣지 못하는 심각한 장애입니다. 10대를 넘기면서 사람들은 이같은 “선택적 듣기”(selective listening)가 더욱 강화된단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선 아예 우리는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는” 심각한 히어링 프로블롬을 대부분 갖고 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나이들수록 고집세고 완고해진다는 말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분명 가정이든, 친구 관계이든, 직장이든, 그리고 더욱이 하나님과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선 첫째로 우리의 마음이 먼저 할례를 받는 일, 곧 마음에 진실함을회복하는 일이요, 그리고 우리의 “곧은 목”을 부드럽게 꺽을 줄아는 겸손의 마음을 품게 될 때 찾아오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