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크리스마스의 역사(3)

1916

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19세기 상류층 미국인들은 무례하고 천박해 보이는 미국의 하층민들에 비해 같은 하층민이라 하더라도 예의를 아는 것으로 보이는 독일인들을 보며 부러워했다. 그리고 그 차이의 배경이 뭘까 궁금해 했다. 그들이 찾은 답은 ‘가정’이었다.

당시 미국의 엘리트들은 독일의 그 가정 분위기를 미국인들의 가정 안으로, 무엇보다 하층민들 가정으로 가져오고 싶어 했다. 특히 독일의 가정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중심으로 선물을 주고 받는 – 이미 당시 독일에서는 문화로 자리 잡은 – 그 센티멘탈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미국의 각 가정에 세워지게 되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이런 이들의 노력에 의해 소개되고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점차 대중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술과 싸움이 난무하던 뉴욕 거리로부터 각 가정으로 그 축제의 장을 옮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산타클로스’였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산타클로스의 원형은 성 니콜라스(St. Nicholas)다. 성 니콜라스를 아이들에게 선물 주는 캐릭터로 변형하여 소개한 인물은 존 핀타드(John Pintard)인데, 뉴욕 거리에 가난한 노동자들이 증가하는 것을 위험요소로 보았던 사람이었다.

성 니콜라스에게서 근엄한 주교 이미지가 사라진 것은 존 핀타드의 친구였던 클레멘트 무어(Clement Clarke Moor)가 지어 1823년 출간한 <A Visit of St. Nicholas> (혹은 The Night Before Christmas)라는 시 덕분이다.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와서 굴뚝 타고 내려와 선물 주는 산타 할아버지’를 보편화한 작품이다. 무어는 이 시에서 성 니콜라스를 근엄한 주교가 아닌 친근하면서도 코믹한 모습의 할아버지로 재탄생시킨다.

1948년에 이 시가 단행본 형태로 나왔을 때 책에 포함된 그림을 보면 뚱뚱하고 서글서글한 이미지의 산타가 짧은 담뱃대를 물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담뱃대의 길이가 계층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했다. 부유한 상류계층은 긴 파이프를, 가난한 하층민 노동자들은 짧은 파이프를 사용했다. 결국, 무어가 짧은 담뱃대를 성 니콜라스를 물린 것은 그를 평민으로 묘사하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어는 왜 산타를 평민 노동자 계층으로 묘사했을까?

무어는 그의 산타클로스를 새로운 형태의 크리스마스 방문객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즉 과거 크리스마스에 부자들을 방문하여 위협하며 먹을 것을 요구했던 하층민 노동자 방문객들에 대한 패러디였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산타는 절대 행패를 부리거나 위협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착하고 유쾌한 서민층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선물 주는 주교의 역할은 남아있지만, 이미지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서민적인 산타클로스가 된 것이다.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산타클로스의 이미지가 대중화되면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노동자들이 행하는 술 취함, 구걸, 모든 종류의 행패와 같은 행동은 부적절한 크리스마스 풍습을 넘어 사회적 ‘범죄’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고 심지어 선물도 주는 평민 산타클로스를 강조할 때 나타나는 반사적 효과였다. 현대 크리스마스의 역사에는 이렇게 계층 간의 갈등이 존재했다는 것이 중요 포인트이다.

이로써 거리에서 즐기는 카니발리즘으로서의 크리스마스는 ‘비정상적’인 것이고,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가족 중심의 크리스마스가 진짜 ‘정상적인 크리스마스’라는 인식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자리 잡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타가 선물을 가지고 가려면 그 선물을 어디서 구할까? Macy’s 백화점에서! 바야흐로, 크리스마스 소비문화의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