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믿음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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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김주용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최근 아들과 야구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공을 던지고 받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과 글러브에 친해지고 있다. 그런데 아들이 너무 어려서 공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어린 아들이 공을 안정하게 받을 수 있도록 머리 아래나 몸 바깥쪽으로 던져 준다. 그런데 가끔 공이 미끄러져서 아들 얼굴에 공이 맞게 된다. 그러면 필자와 아들은 깜짝 놀란다. 아들에게 “아들, 미안해 아빠가 잘못 던졌네. 괜찮아?”라고 묻는다. 그러면 아들이 이렇게 대답한다. “괜찮아요. 아빠가 내가 다치지 않게 잘 던져 주려고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니 전 괜찮아요.” 그 대답을 들은 필자는 속으로 ‘이 놈이 내가 자기에게 안전하게 던져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고 기특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니 어쩌다가 공이 자기 얼굴과 몸에 맞아도 아빠에게 화를 내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빠가 자기에게 일부러 공을 맞추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힘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믿으면 사람과 사람이 연결이 되고 그 안에서 사회를 만들어내기도 하며 세상도 바꾸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앞에서의 이야기처럼, 믿음이 있으면 40살이 넘은 사람과 5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공 하나로 기쁨과 행복을 나눌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믿음에는 어떤 조건과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신뢰의 마음을 공유하기만 하면 된다. 서로를 확신하는 것, 바로 그것만 있으면 믿음은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기독교는 그 믿음을 이야기한다. 특별히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산을 옮길만한 힘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실제로 목동이었던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렸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왕이 되기도 했다. 혈루병 걸린 여인도 보이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의 작은 옷자락만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아픈 몸을 치유 받는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다.

베드로 사도는 믿음으로 예수를 전했다. 그것은 결코 믿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눈에 보이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존재가 태양과 같은 살아 있는 신, 로마황제였다. 믿음을 이야기한다면  눈이 보이는 살아 있는 권력과 힘을 이야기하는 것이 더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베드로 사도는 바보같은 짓을 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이미 죽었으며 그것도 사형 당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하는 것은 헛된 믿음에 빠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지금 어찌 되었는가? 그때 헛된 믿음으로 생각했던 보이지 않는 것을 전했던 베드로는 60억 인구가 넘는 2018년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위대한 성경의 인물이 되어 있다. 그러나 로마황제와 그 제국을 여전히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처럼 믿음은 시간과 역사의 힘 속에서 그 능력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5장 9절에서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히 하사”라고 증거한다. 믿음이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그것은 세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치 지도자나 어떤 제도가 아니다. 일부분은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세상의 변화는 반드시 믿음이 그 공동체에 주어질 때에만 가능하다.

교회는 바로 그 믿음을 가진 공동체이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이 알 수 있는 크고 비밀한 일을 해 낼 수 있다. 그 조건은 좋은 조건의 목회자나 물질이 넉넉한 성도들, 많은 수가 모이는 교회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우리가 서로 얼마나 변화를 위한 신념과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믿음을 가지라. 믿음은 환난과 곤고, 핍박이나 기근, 적신이나 위험이 있을지라도 결코 우리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믿음으로 넉넉히 이기는 자들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