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바보와 버가에서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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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1차 선교 여행 중 바보와 버가에서 각각 굵직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두 사건을 관통하는 영적 공통 분모가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이들의 첫 행선지는 바나바의 출생지인 구브로라는 섬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서쪽으로 이동하던 선교팀은 총독이 거주하는 바보라는 도시에 도착합니다. 성경에 지혜롭다고 표현된 총독은 선교팀을 불러 복음에 대해 듣습니다. 그런데 총독의 신임을 받아온 유대인 출신 박수(남자 무당)가 선교팀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방해합니다. 결국 총독 앞에서 영적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영적으로 오랫 동안 박수의 영향을 받아온 총독은 굉장히 혼돈스러웠을 겁니다. 이때 바울이 순식간에 싸움을 정리해버렸습니다. 박수를 똑바로 바라보며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며, 의의 원수여 니가 언제까지 주의 바른 길을 왜곡하려 하느냐? 이제 주님의 손이 네 위에 있어 네가 당분간 소경이 되어 앞을 못보게 될 것이다.”바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박수는 앞을 못보게 되었고, 이 신비한 장면을 직접 목도한총독은 복음을 믿게 되었습니다.바울이 박수와의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와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우시고, 바보까지 인도해주신 성령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고 계심을 믿었던 겁니다. 바울은 그 믿음을 가지고 사탄의 종으로 살아온 박수를 넉넉히 이길 수 있었던 겁니다.

구브로에서 복음 전파 사역을 마친 선교팀은 섬을 떠나 지금의 터키 남쪽 해안에 위치한 버가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바나바의 사촌 요한이 선교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등을 떠민 몇 가지 원인들이 있습니다. 먼저 리더십의 변경이 요한에게 적잖은 충격을 준 것 같습니다. 선교팀이 출발할 때는 바나바의 이름이 바울 보다 앞서 언급됨으로, 리더가 바나바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보 사건 이후 바울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겁니다. 리더십에 변화가 생긴 겁니다. 바나바와 사촌지간인 요한은 섭섭했을 겁니다. 또한 요한은 바울의 리더십이 불편했을 수 있습니다. 바나바의 리더십은사람을 보다 중시여기는 타입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리더십은 일을 더 중시여기는 타입인 겁니다. 요한은 목표를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직진해가는 바울의 리더십에 잘 적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또 한 가지의 이유는 환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선교팀이 이제 가야할 길이 험한 겁니다. 버가에서 비시디아 안디옥까지는 거리가 110 마일 정도 되는데, 그 길이 대부분 험한 산길인 겁니다. 게다가 산 속에 자리잡고 행인들의 재물과 생명을 노리는 도적패들도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야한다는 말을 듣고겁이 났던 것 같습니다.이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요한은 선교를 포기하고 만 겁니다. 선교팀 내부에 동요를 일으킨 큰 사건이었습니다. 누군들 그 험한 선교의 길을 선뜻 가고 싶었겠어요. 바울은 팀내 영적 분위기를 추스르느라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2차 선교 여행 때 요한을 다시 데려가자는 바나바의 요청을 끝까지 거절한 것을 보면 그때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사건을 좀 더 깊이 묵상해보면요한이 선교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선교팀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 겁니다. 그 믿음을 잃어버린 순간, 그를 불편하게 만든 작은 이유들이 선교를 포기하도록 이끈 절대적 이유들로 둔갑하고 만 겁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소명에 끝까지 충성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