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밤이 없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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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어느 여름 알라스카를 방문한 때 밤이 없는 백야를 실감하였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5시에 퇴근하자 저녁을 먹은 후 낚시를 나갔다. 일과 놀이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사람에게는 적격인 것 같다. 사람은 낮의 속성을 갖고 있다. 어둠은 악의 원천이요 귀신의 세계라 태양이 올라오면 떠나가는 것으로 생각하여 빛을 밝힌다. 촛불이나 호롱불, 횃불 시대에서 전기와 조명 구조의 변화로 이젠 온 밤을 밝혀 뉴욕 서울 파리등 세계의 큰 도시는 밤이 끝난 세상처럼 보인다. 유익한 면이 있지만 또한 밤과 낮이라는 생의 리듬을 파괴하는 많은 문제가 일어난다. 인공 빛이 사람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밤에 자면서 멜라토닌이 생성되어 면역력이 강화되고 낮에는 새로운 힘으로 일을 하는데 오염된 빛이 유방암 전립선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있다. 이제 이전에 즐기던 밤 하늘의 은하계와 북극성 북두칠성 별자리를 찾던 낭만은 사라지고 빛에 덮인 도시의 하늘은 텅빈 공간이 되고 있다. 케냐의 암보셀리 공원에서 하룻밤을 지나며 하늘 전체를 가득 메운 별들이 내게로 쏟아지는 놀라운 아름다움을 즐기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알라스카의 독립기념일 밤 11시 폭죽은 소리는 들리나 공중에 불은 보이지 않고 연기만 퍼지니 화이어웍의 즐거움이 없었다. 밤이 없어지자 생태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밤에 활동하고 이동하는 철새와 곤충, 박쥐와 거북이, 개구리와 두꺼비, 닭이나 노래하는 새의 시간에 혼란과 멸종이 발생한다.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위해서는 밝은 낮과 어둔 밤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이 덮여 있는 형편에 빛을 창조하시니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어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고 밤과 낮을 구분하셨다. 하나님이 어둠의 세계에 빛을 만드셨지만 모든 것을 빛으로 바꾸지 않고 어둠을 남겨두시어 빛과 어둠이 공존, 교체하게 하시고 생명과 아름다움을 누리게 하신다.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분간할 수 없는 어두움에 빛이 들어오니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캄캄한 밤하늘 은하계와 달과 별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는 저편에서 오는 태양빛이 있어서가 아닌가!

이태리의 한 수필가는 어둠은 인간사회의 윤활유라, 어두운 밤하늘은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라 하였다. 밤하늘은 천문대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호기심을 일으키고 사람의 지적 영적 탐구와 성장의 촉매가 되어 시간 수학 철학의 기본이 되었다. 칸트는 “내 심장을 경이로 가득 채우는 두 가지, 하나는 내 속의 도덕심, 또 하나는 내 위에 있는 하늘의 질서, 표현할 수 없어도 일단 경험하면 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낮만 있고 빛만 있으면 경험하지 못하는 인생의 실상이다. 어둠을 통하여 인생의 깊이와 의미를 얻는다. 밤의 어둠을 경험하지 않고 인생을 이해하기 어렵다. 다윗은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의 깊은 밤에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보고 찬양하였다. 죽음의 병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칠흙같이 어두운 영혼의 밤에 부활의 주님을 만난 것이 나를 평생 주의 종으로 살게 한 감격이다. 밤이 없고 어둠이 사라지면 가장 귀한 인생의 보배를 놓치게 된다. 어두운 인생의 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