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벙커가 아니라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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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약 60마일 정도 떨어진 한 작은 마을에 노아의 방주가 있습니다. 이 노아의 방주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배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방주가 아니라 땅 속으로 약 13피트 깊이로 묻혀 있는 스쿨버스들입니다. 노아의 방주와 땅 속에 묻혀 있는 스쿨버스라니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시설을 만든 이유를 살펴보면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방주와 스쿨버스가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통해 그 의미가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땅 속에 묻힌 스쿨버스 그것도 한 대가 아니라 무려 42대의 버스를 땅 속에 묻은 사연은 무엇이고 왜 그것을 노아의 방주라고 하게 되었을까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 시설을 만든 사람은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브루스 비치라는 83세의 노인입니다. 그는 원래 1960년대까지 전기 기술자로 미국 시카고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전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냉전의 시대였고 두 강대국은 서로를 견재하기 위해 앞 다투어 각종 신무기와 우주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브루스씨는 미국과 소련이 핵폭탄이며 수소폭탄과 같은 가공할 무기들을 보유하며 서로를 향해 엄포를 놓는 모습을 보면서 곧 세상이 핵전쟁으로 망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게 됩니다. 핵전쟁의 공포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는 자신의 직장도 그만두고 살던 곳도 떠나 캐나다의 시골 마을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캐나다가 미국 보다는 상대적으로 핵공격에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핵전쟁의 두려움을 떨쳐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핵전쟁이 난다고 할 지라도 핵을 피할 수 있는 대피 시설을 만들기로 작정합니다. 그래서 호닝스 밀스(Horning’s Mills)라는 곳에 그가 소유하고 있던 약 5만600㎡의 땅을 파고 42대의 스쿨버스를 묻어 핵폭탄 대피소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저 스쿨버스를 땅 속에 파 묻은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버스와 버스를 서로 연결하여 각각 숙박시설, 의료시설, 세탁실, 오락실, 놀이방, 식당, 보일러실, 식량창고, 물탱크 등등의 설비를 만들어 한꺼번에 약 500여명의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지하 도시를 만든 것입니다. 1982년 1차 공사를 마친 뒤 그는 이 핵 대피 시설의 이름을 ‘노아의 방주 2’라고 명명하고 누구든지 핵공격을 피해 숨을 수 있도록 시설을 개방합니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곧 세상이 핵전쟁으로 멸망할 것이니 어서 속히 자신이 만든 노아 방주 시설로 대피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83세의 고령의 나이가 된 지금도 여전히 그는 핵전쟁으로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그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브루스씨와 같이 세상의 마지막이 핵전쟁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같은 상황속에서 우리는 핵보다는 바이러스의 공포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세상의 끝, 곧 마지막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세의 두려움이 몰려 올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브루스씨 처럼 마지막 환난과 재난의 시대를 대비하여 대피소를 만들고 그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눅 19:13) 누가복음 19장에 기록된 귀인과 종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주인은 그 종을 불러 열 므나를 주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한 주인은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표상하는 것이고 열 므나를 받고 장사를 하게 된 종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 속의 중요한 포인트는 주인이 오기까지 계속해서 장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장사하라는 말이 우리의 세상적 비지니스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장사란 주님께서 하늘로 가시면서 우리에게 맡기신 천국 복음을 가지고 선교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 마지막 시대가 다가올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마지막 때를 대비하여 어디로 피신하거나 도망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 올 수록 우리에게 맡겨진 복음 사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일상의 삶을 포기하고, 세상의 두려움으로부터 도망하여 나 혼자의 목숨을 구하는 자는 충성된 종이라 칭함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일상 속에서, 삶의 현장에서, 비지니스의 장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복음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중에 주님의 재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