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도가 아닌 제자로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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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담임)

 

성경 마가복음 3장에 보면, 예수가 12명의 제자를 세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별히 3장 13-19절에 나오는 내용은 ‘12제자 소명장’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원어를 살펴 보면, “이에 12을 세우셨으니”라는 한글성경의 표현은 실제 “이에 12사도를 세우셨으니”라고 번역이 되어야 한다. 한글성경을 보면, 12제자의 소명 이야기라고 설명할 수 있지만, 원어 성경은 12사도를 세운 것으로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 성경의 12제자 소명이야기에는 언어적으로는 ‘사도’(아포스톨로스)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 역사의 실제는 예수가 ‘제자’(마데테스)로 12명의 사람을 부른 것이 맞다. 바로 이 3장 14절 이후에 마가복음에서는 12명의 제자를 이야기할 때, 47번 제자를 지칭하는 표현이 나오는데, 단 한 곳(막 6:30)을 제외하고는 모두 ‘제자’로 표현되어 나온다. 그것은 곧 마가복음 기자는 12명의 제자를 사도가 아닌 제자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표현이었다는 증거이다. 단지 12제자의 소명이야기가 나온 3장 14절에서는 예수가 12명을 부를 때의 상황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생애 이후 30-40년이 지나고 초대교회 역사 속에서 12명의 제자를 사도라고 부르던 마가복음이 기록했던 당시의 상황으로 표현하다 보니, 제자 대신에 사도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12명의 제자 소명장에서 원어 성경이 ‘사도’로 사용한 것은 예수의 의도가 아닌 마가복음 기자의 역사적 기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12명을 예수의 사람들로 부르신 것은 사도가 아닌 제자로 부르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성경비평적 접근이 아니더라도, 예수는 12명을 사도가 아닌 제자로 부른 신앙적 이유가 분명하다. 예수는 사도를 세우는데 관심이 없었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교회의 직분자를 세우는 것이 예수의 관심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는 좋은 조건과 규정을 통과하는 자들이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에게 있어서, 제자는 그 어떤 조건과 요구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저 예수의 부름, 예수의 선택, 예수의 전적인 택함만이 있었다. 그렇게 전적인 하나님의 부름과 택함으로 제자가 된 자들은 사도처럼 어떤 위치와 자리에 앉는가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제자(마데테스, Learner)라는 이름 그대로 배우는 자가 되고자 노력했어야 했다. 바로 예수는 그런 배우는 자로서의 제자를 부르고자 하신 것이다. 실제로 예수는 마지막 유언과 같은 당부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고 말씀하고 있다. “모든 민족을 사도로 삼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제자”를 삼으라고 분부하고 있다. 이처럼, 예수는 사도가 아닌 제자를 세우고, 그 제자들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길 원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유효한 하나님 나라의 사역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교회는 어떤가? 목회자들부터 자신들은 제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도, 그 이상의 존재인 것처럼 행동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자리를 자녀들에게 물려 주기까지 하려고 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추한 현실이 되고 있다. 예수가 부르는 사람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사도가 아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배우겠다고 결심하며 그 신앙으로 살아가는 제자이다.

사도는 나쁘고 제자는 좋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도 교회 안에 필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사도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모두 먼저 예수의 제자, 곧 예수의 삶과 언행을 배우겠다고 결단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 제자가 될 때, 능력 있는 사도가 될 수 있는 것이고, 제대로 된 제자일 때, 존경 받는 사도가 될 수 있다.

교회에서 사도와 같은 조건과 규정을 통과하여 직분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가장 겸손한 제자가 되길 당부한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교회는 제자에 의해 세워질 때, 진짜 성령의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