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샘이 깊은 우물] 편견과 편애 그리고 역성

1730

서도권 목사/크로스포인트교회 담임

 

통일 왕국의 2대왕으로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농사를 지으며 양을 치는 아버지 이새와 알려지지 않은 어머니 사이에 여덟 아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룻과 보아스의 증손자며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다윗은 목자이면서 음악에 능하였고 시를 잘 썼으며, 군인으로 많은 전쟁을 겪었고, 정치인 이자 외교가이며 예언자이자 왕이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 선택되는 과정도 아주 파격적이고 아슬아슬한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일곱 명이나 되는 건장한 형들, ‘이새의 아들 중에서 골라 기름을 붓고 왕을 삼으라.’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고 간 선지자 사무엘에게 아버지 이새는 막내아들 다윗을 ‘인터뷰’ 대상에서도 아예 제외 시켰고, 사무엘도 가문의 장자인 엘리압을 기름 부어 왕으로 삼으려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유명하신 말씀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하시며 급히 ‘Red Button’을 누르시고 들판에 양들과 뛰노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어린 다윗을 불러 기름을 붓고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바울도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롬 2:11; 골 3:25, 등)고 기록했는데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외모는 사무엘이 말하는 외모(outward appearance)와는 전혀 다른  ‘favoritism’, 혹은 ‘partiality’와 같은  편애, 편견, 편파, 역성, 치우침, 불공정한 차별대우, 등을 말씀합니다. 야고보 선생도 사람을 외모로 구분하고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약 2:1) 교훈을 설명하면서 두 사람이 각 각 교회당에 들어올 때 한 사람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손에 가락지를 끼고 들어오고 다른 사람은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 외모만으로 부자와 가난한자로 구분하여 안내를 하는 모습을 기록했습니다.

이 때 안내자는 좋은 옷을 입고 아름답게 치장 한 부자는 교회에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남루하고 가난한 옷을 입은 사람은 구제대상이 되며 근심거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외모로 사람을 구분하여 편견을 가지고 편애를 한 것입니다.  또 그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에게 각 각 ‘교회가 그들에게 어떤 영적인 도움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교회의 본질과 다른 동기를 가지고 안내 했습니다. 그렇다고 야고보가 부자를 대우하지 말거나 등한시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람을 외모나 경제적 혹은 사회적 신분으로 나누어 구분하지 말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대하는 것 같이’ 모든 사람들을 똑 같이 공평하게 사랑하고 동일하게 대우하라는 뜻입니다.  편견을 가지고 편애하거나 역성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때 좋아 하는 말씀만 골라 순종하고 싫어하는 말씀은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죄가 더 중한 죄와 덜 중한 죄가 없이 똑 같이 심각한 것처럼, 율법도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율법이 없이 모든 율법이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보좌 앞에서 우리를 심판 하실 때도 모든 말씀으로 모든 사람을 공의로 심판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구원을 잃거나 하나님의 진노에 들어갈 염려는 없지만 편애나 편견, 역성 등을 불순종한 상을 잃게 될 것입니다. 편견이나 편애, 역성 없는 하나님의 교회 -. 세상과 구분되는 신비스러운 유기체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해야 하고, 모든 사람을 똑 같이 대우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앞에 세상의 모든 구분은 사라지고 공평과 정의로 통일 되어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속히 오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