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생각하며 느끼는 세대의 종말은 오는가?

1308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한글 번역본 타이들에 끌려 나는 니콜라스 카아(Nicholas Carr)의 저서 (Shallow)를 살펴보았다. 이 책은 인터넷이 사람들의 생각과 소통 방법 등 행동을 바꿀 뿐 아니라 두뇌를 변화시키고 유전자까지도 변화를 초래한다고 갈파한 미래학 저서이다. 래디오가 등장했을 때 인쇄 매체의 종말을 예고했지만 인쇄 매체는 살아왔다. TV가 등장 했을 때도 종말을 예고당한 신문과 래디오는 성행해 왔다. 왜냐하면 그 매체들은 소식을 문자로 표현하건 시청각 화면으로 소개하건 비슷한 내용들을 표현하는 방식의  효과 정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 시대에 매체들은 사람들이 선형(line shape: 직선 혹은 곡선)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아날로그 패턴) 유도했었다. 인쇄 매체의 왕인 책은 사람의 주요 관심을 흩트리는 자극들을 피해서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주의집중과 일관된 생각의 흐름(train of thoughts)을 가능케 한다. 책은 중요한 단어나 흥미있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 기억을 보관할 수 있고 그 점에서 인쇄 매체(신문)의 경우도 스크랩 해두며 밑 줄치기로 책에 유사한 기능을 갖는다.

그러나 인터넷 매체들은 두뇌의 기능을 컴퓨터로 대신하여 자체 하드 드라이브나 저장 업체의 장비에 기억을 연장하며 인출하여 재활용케 한다. 인터넷은 사람의 생각을 직선이나 곡선의 비교 방식을 떠나 방사형 또는 패턴이 없는 퀀텀 식으로 도약시킨다. 인터넷은 사용자의 주요 관심을 산만하게 흩트려 주의집중을 불가능케 한다. 온라인에서 생각의 흐름이 창의적 무아지경(flow)에 이르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컴퓨터 스크린 화면으로플로리다의 태풍 뉴스를 보다가 주변에 떠오른 링크들을 클릭함으써 갑자기 엉뚱한 경지인. 아프리카의 사파리 장면에 들어간다. 인터넷 사용자는 저자를 따르지 않고 내용을 임의로 바꿔 기억시킬 수 있다. 그래서 정보를 조작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기도 쉽다. 본래 인간 두뇌는 진실과 가상의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데 인터넷 사용자는 조작된 허위를 사실인양 믿기 쉽다. 온 라인 사기나 온 라인 테러를 당해도 개인적인 방비가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인터넷 매체가 사람들의 생각할 필요를 없애가는 현상이다. 그래서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면 허상(illusion)을 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인터넷은 인식 착오를 일으켜 정서의 왜곡이 쉽게 된다. 연민의 정서를 일으키는 태풍 피해 사연을 보다가 샤롯빌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인종혐오 시위 장면을 보고 증오 정서를 느끼게 된다. 재난 당한 사람을 보면서도 마치 맹수에게 잡혀 먹히는 친구를 멍하니 바라보는 윌러비(아프리카 들소)처럼 감정도 잃게 된다.

아무리 지식 정보가 많아도 자기의 상황에 적용할 결정은 각자 본인이 하는 선택은 남는다. 학구열이 왕성할 대학생들이 교과서 구입을 않고 강의실에서 지식 정보를 가르치려는 교수를 거부한다. 인터넷 구글 서취를 하든가 온 라인 클래스에 가도 되므로 교수는 학생들에게 지식 정보를 가르치기 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에 이르는 절차를 훈련시키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 된다. 그 결정 기능마저 인공지능에 뺏기면 사람의 생각하지 않는 두뇌 부위의 신경망은 더욱 퇴화할 것이다. 따라서 상황의 변화에 대한 정서의 반응 (감정 인식)도 쇠퇴한다. 인터넷보다 더 오랜 역사의 ‘국민정서’를 법에 우선시키는 감정적인 한국민의 안보 불감증은 두뇌 반응이 마비 또는 퇴화된 한 단면이다. 그 유사한 도전은 지금 모국어 사용 인구가 감소하는 한인 이민 1세 사회의 장래에 여러 가지 비관적 지표로 나탄난다. 특히 지난 반세기 재미 한인사회를 이끌어 온 언론–그 중에서도 한국어 신문과 한인 교회들의 쇠락이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관찰되는 현상은 돌이킬 수 없는가? 장차 더욱 비탈길로 내려가는 사실에 대처할 방도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