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악과 The Tree of Knowledge of Good and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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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형 은퇴목사

인간 타락과 죽음을 가져오는 선악과를 왜 하나님이 만드시고 사람이 먹도록 버려 두셨는가 하는 것은 큰 질문이다.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니 보기에 좋았으나 마지막에 만든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았다. 각종 동물을 그에게 보내어 아담이 그들의 이름을 지었지만 그의 짝이 없었기에 하나님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었다. 창조가 완성되어 보기가 매우 좋았다.

하나님이 사람을 위하여 동산을 창설하고 각종 과일 나무와 함께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 하시며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마음대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선악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최초의 죽음이 걸린 금지조치를 주셨다. 왜 이런 금령을 내렸을까?

하나님이 입 기운을 넣어 만드신 아담은 육체를 입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속성으로 공중의 새와 들의 동물을 다스렸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었다. 하나님은 만물에 질서의 법을 주시고 하나님과 아담사이에도 질서와 한계를 두어 아름다움을 지키신다. 아담은 원하는 바를 행하는 자유를 가지지만 또한 관계와 질서를 위하여 자유를 바르게 사용하는 책임도 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만물 중에 선악과는 아담에게 주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것임을 확인하심이다. “이것은 내 것”이라는 한계를 정하셨다. 아담에게는 하나님의 것을 인정하고 구분하며 존중할 책임이 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될 것을 하나님이 아시고 먹지 못하게 하셨다”고 뱀이 말한다. “선악을 아는” 것은 선악을 구분하는 것이지만 아담은 알고 구분하는 능력이 이미 있었다.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이나 배필을 보자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남자에게서 나왔기에 여자라” 한 것은 지식이 있었다는 표시다. 하나님이 다윗이나 솔로몬에게 선악을 구분하는 지혜를 주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선물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그것을 먹음으로 오는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은 하나님께만 속하였다는 의미다. 하나님을 존중하는 다윗은 그를 죽이려는 사울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자기가 판단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처럼 되겠다는 선악과의 영향이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을 듣고 선악과를 바라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이는 욕망이 일어난다. 욕망은 좋은 것이나 그것은 한계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바른 관계가 아니라 그는 자기가 다스려야 할 한 동물의 말을 듣고 일어나는 욕망에 따라 선악과를 먹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었더니 하나님 형상의 영광이 떠난 벗은 몸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친근하던 하나님이 두려워 숲 속에 숨는다. 아담은 한 몸이라던 하와를 비난하고 그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생명 관계가 깨어진 죽음이다. 이들은 생명나무 열매로 영원히 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동산에서 추방되고 이들의 자녀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다. 이것이 선악과의 결과, 인간의 역사다.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셔서 죄인이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열고 예수를 믿음으로 죄 용서와 영생을 얻고 생명나무 열매를 즐기는 천국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