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한 것을 계획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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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담임)

한 여자가 어느 날부터 오른팔을 들지 못할 정도로 고통을 호소했다. 병원에 가도 원인이 파악되지 않았다. 뼈와 신경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팔을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신과를 찾아가 마음의 문제인지를 파악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원인을 발견했다. 그 원인은 바로 그의 시어머니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이었다. 그의 시어머니는 하나에서 열까지 며느리의 문제를 지적했다. 집에 오면 입은 옷에서부터 먹는 음식에까지 문제를 지적을 하고, 서로 떨어져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성을 내며 탓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시어머니로부터 웃는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그 여자는 어느 날부터 시어머니를 때리는 상상을 하고 꿈을 꾸기 시작했고, 그런 꿈과 상상이 시작되면서부터 오른팔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들지 못할 정도로 아프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어머니의 악한 행동은 며느리의 고통으로 이어졌고, 며느리의 상처는 곧 또 다른 악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이처럼 악의 순환, 곧 악이 악을 낳는 악의 대물림 현상은 우리 삶 가까이에 존재한다. 선한 목적의 훈계와 연단이 아닌 이상, 착취와 억압, 무시와 차별에 의한 처벌과 폭력은 또 다른 폭력과 화를 만들어 낸다. 악은 또 다른 악을 만들어 낼 것이고, 그 악이 계속해서 순환하고 유전되어지는 것이 이 세상의 당연히 이치처럼 생각되어지고 있다.

그것을 끊지 않으면, 악은 또 다른 악을 탄생시키고 자라게 하여 마지막에는 악의 열매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순환과 유전을 막기 위해서는 선함이 반드시 개입되어야 한다. 악의 연속된 역사를 보아오고 있다면, 반드시 그 악을 끊어내기 위해서 선각자는 선을 계획하고 선을 실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때 세상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을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이사야 32:7-8)고 말했다. 악한 사람은 늘 악한 것을 계획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선한 자는 선한 일을 계획하며, 그 선한 것에 서서 살아갈 것이라고 예언한다. 따라서 악함을 눈에 보고 있다면, 그 악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반드시 우리는 선한 계획으로 선함을 그곳에 세우고자 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정의롭지 못한 세상은 변하게 될 것이고, 악한 세상은 선한 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침체와 더불어 시카고 교계의 어려움을 돌아본다. 악함이 그곳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자들이 기도와 말씀으로 선함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교회만 그런가? 한국사회도 악함의 역사에서 그 뿌리를 끊어내기 위해서 선함의 정치, 선함의 경제, 선함의 역사를 추구해야 한다. 각 사람의 가정과 삶에서도 이와 같을 것이다. 악이 아니라 선을, 불법이 아니라 정의를, 거짓이 아니라 진리를 계획하고 준비하여 반드시 악의 줄기를 끊어내고 선함이 채워지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세의 유럽을 어둠과 악함으로 이끌던 로마 가톨릭 교회와 교황을 대항해, 마틴 루터와 칼빈이 선함을 계획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킨지 500년이 지났다. 그러나 그 정신을 지금 우리의 개신교회는 계속해서 계승해야 할 것이다. 악을 선으로 이기라고 사도 바울을 이야기한다. 선함을 계획하지 않고 정직을 실행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결코 현재의 악함을 이길 수 없다. 선한 것을 계획하라. 악을 이기는 유일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