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실감하지 못하는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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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회 최순봉회장

최순봉(상록회장)

 

우리가 늙어가고 죽음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서는 것을 순간마다 실감한다면 아마도 그 감각에 짓눌려 숨쉬기조차 힘들겠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실감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이 진정으로 다행한 일일까!
변화란 이러한 생리적 현상만은 아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은 우방(友邦)이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은 또 ‘어떻게 변할까’ 아무도 꼬집어 장담 못할 현실이 우리의 삶의 현장이지만, 어떻게든 변화하고, 그 변화들은 섭리에 따른 물리적 변화일 수도 있고 돌변하는 환경에 휩쓸려 돌연변이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결과들이 섭리의 도(道)를 벗어난 것은 어디도 없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죽음은 삶의 어떤 수단도 연속성이 중단되는 엄중한 그 결과를 살아서는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과 미래의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까지는 삶의 연장선의 그 끝이고 보면 스스로가 관리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자아관리란 간절함이 결여되면 교만해지고 나태해지며 간절함이 넘치면 집착에 빠져 사리를 분별하기 어렵다.

몇 주전에는 “소(小)탐(探)대(大)실(失)”이란 말을 상고한 일이 있는데 그 연장선에서 “아(我)생(生)지(之)후(後)살(殺)타(他)”란 바둑을 두는 대국자가 즐겨 인용하는 반상의 용어를 삶의 현장에 대치시켜 보려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삶 속에 정의는 이미 죽어 있는데 정의로운 사람처럼 정의롭게 위장해 놓고 남의 잘못만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사람이 지도자의 윗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를 흔히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해관계는 산술적이고 이기적이라 남의 돈으로 자신의 생색을 덧입는 사람이 그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전직 단체장을 역임한 분들 중에 많이 있다. 더러는 자신의 임기 중에 사업을 독자적 사업인 양 분리하여 지속하는 사람도 있고 임기 중의 공로를 우려먹고 평생을 사는 사람도 본다.

그러니 단체는 연속성을 상실했고 단체장이 되면 일회성 인기 몰이에 골몰하다 전직 무슨 단체장이란 자신의 경력에 추가하여 남아있는 삶을 수식하려 한다.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면서 이웃은 변화되길 강요도 한다. 필자가 시카고에서 유일한 연장자 단체인 한미노인 상록회의 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자신은 한푼도 상록회의 필요를 위해 내어놓지 않으면서 어떤 누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며 합리화에 능한 사람을 볼 때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아생지후살타’란 말뜻이나, 수신(修身)이란 말이나, ‘너 자신을 알라’는 충고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보았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내 ‘너는’ 하고 자문한다.
그렇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무슨 소용이 될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는 돈이 필요하기에 돈이 곧 능력을 대신한다. 그러한 능력은 남을 지배할 수 있다 해도 고매한 인격은 아님이 분명하다. 며칠전 운동을 하고 옷을 훌렁 벗어버린 샤워 장 탈의실에서 나보다 연세가 한참 많은 선배님 한 분을 만났다. 그분은 반갑게 손을 내미시며 최 회장 고생 많지? 미국까지 와서 아직도 얻어먹는 것에만 연연하는 것 보면 우리는 얻어먹는 습성을 못 버려서 그래, 나도 얻어먹으면 기분이 좋거든! 하지만 사주는 사람도 돈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야, 밥 얻어먹고 돌아서서 욕하는 사람이 더 많아, 배부른 놈에게 밥을 사 줘서 그래, 미국까지 와서 밥 굶는 사람 없잖아! 나 쪼끔 보낼게 라고 하셨다. 그리고 며칠 후 $500.00나 되는 거금을 상록회로 보내셨다. 수표를 꺼내들고 전 재산을 헌금함에 넣은 과부생각은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