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버지의 이유

1015

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Superman Dad’라는 제목의 유튜브 영상이 있습니다. 그 영상 속에는 자동차가 덮치고, 야구 방망이가 날아들고, 계곡이나 난간에서 떨어지는 아찔한 순간 수퍼맨처럼 달려와 아이를 구해내는 아빠들의 모습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렇듯 위험에 빠진 자녀들을 구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달려오는 것이 아버지의 모습니다. 그런데 시편 22편에는 다윗은 아버지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이 울부짖음은 아버지가 자기를 버린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절망감에 빠진 아이의 모습입니다. 그의 신음은 사자가 포효를 하는 듯한 강한 부르짖음 이었습니다. 다윗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시 37:25, 사 41:17). 이는 그의 지난 인생을 통하여 그가 경험한 바 였습니다. 양떼를 지키기 위하여 사자와 곰들과 싸울 때,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사울의 핍박 가운데서도, 블레셋과의 전쟁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항상 응답하셨고 함께 하셨으며 도우셨습니다.그런데 왜 지금은 응답하지 않고 계시는 것일까요?

시편 22편은 다윗의 시편이기도 하지만 이는 예수님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시편 22편의 여러 구절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 22:16-18) 이 구절은 십자가 고난의 장면을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으며 시편 22편 1절의 기록은 마태복음 27장 46절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다니까”라는 예수님의 부르짖음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시편 22편의 다윗의 부르짖음처럼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고통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고 부르셨지만 아버지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아버지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올라 오실 때 하늘이 열리며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변화산에서 변형되셨을 때 그리스도를 당신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이 분명히 들렸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장 힘들고, 가장 외롭고,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순간 아버지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 고통의 순간 하늘 아버지는 그 자리에 안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아들 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어느 누구 보다도 가까이에 바로 십자가 곁에 계셨습니다. 십자가 주위에 펼쳐졌던 검은 구름의 장막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마 27:45). 그러나 고통 당하는 아들의 부르짖음에 대답해 줄 수가 없었습니다. 못이 박혀 피가 줄줄 흐르는 손을 잡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못박혀 매달린 그 몸의 무게 때문에 못 박힌 손과 발이 찢어져도 그 몸을 안아 올려 주실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십자가의 고통은 예수께서 혼자 감당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요 1:29). 그것이 아버지의 이유였습니다. 그 십자가는 아들이 혼자 져야 했기 때문에 그래야만 우리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마음이 아프고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아버지는 대답할 수도 없었고 나타날 수도 없었고 아들을 그 고통 가운데서 건지실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22편의 다윗과 같이 소리칩니다. 아버지!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 왜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십니까? 왜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기도하고 오랫동안 매달렸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분이 못 들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이 못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 바로 그 응답을 주시지 않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를 더 강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기 위함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함이기도 할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의 기도가 지금 바로 응답되지 않는 것에는 아버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한치 앞도 내다 보지 못하는 인간인지라 아버지의 이유를 지금 당장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분의 뜻, 바로 아버지의 이유를 이해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참고 견디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