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이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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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한마음재림교회/시카고)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창 12:7-8)

창세기 12장은 성경의 연대기 가운데 족장 시대로 들어가는 매우 중요한 장입니다. 바벨탑 사건의 결과로 언어에 따라 민족이 나누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를 따르는 한 민족을 일으키시고자 신실한 믿음의 한 가족을 택하셨습니다. 그 가족이 바로 아브라함 가족이었습니다. 이제 복의 근원이 되어 그 이름이 창대케 되고 나아가 큰 민족을 이루게 될 아브라함. 오늘의 본문에서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신실한 신앙의 한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는 가는 곳 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의 시조가 될 인물, 곧 믿음의 조상이 된 이 사람의 신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항상 단을 쌓는 사람 곧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기도’라는 단어의 한자를 풀이해 보면 제사를 드리는 것과 기도를 드리는 것이 같은 행위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중국 후한 시대에 부수의 기원을 설명한 [설문해자]에 보면 원래 ‘기'(祈)자에는 ‘시'(示)와 ‘도끼 근'(斤) 사이에 ‘양'(羊)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시'(示)자는 본디 신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한 제사상을 형상화한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기'(祈)자는 제사상 위에 양을 도끼로 찍어 바칠 만큼 간절한 바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브라함이 단을 쌓고 양을 잡아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던 모습을 중국의 문자가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중국의 문자를 통해서 볼 때도 단을 쌓아 제사를 드리는 것은 곧 기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들도 그의 모본을 따라 항상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치 못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성경 말씀을 잘 알고는 있으나 늘 기도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모습 속에서 기도에 대한 한가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는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름을 불렀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서 ‘불렀다’는 ‘말을 걸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곧 ‘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이 가는 곳 마다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항상 그분과 대화 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화하기를 좋아합니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줄 때 나의 존재감이 확인되고 대화를 통한 교감이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합니다. 그것은 인격적으로 존재하시는 우리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그분도 우리와 늘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자녀들이 ‘아버지~ 어머니~’ 하고 전화 한 통화만 해줘도 기쁘고 행복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기뻐하십니다. 얼마나 그분이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하시는지 성경은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먼저 대답을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사 65:24)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이 얼마나 간단하고 쉬운 일입니까! 우리가 부르기도 전에 응답하시려고 준비하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이라고 이름만 불러도 그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아이고 하나님!” 우리가 때때로 갑작스러운 일을 당할 때 습관적으로 뱉어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은혜가 됩니다. 삶을 살아가는 순간 순간 하나님을 부르는 것입니다. “아이고 하나님!”을 외쳐 봅시다. 그 말이 “하나님 도와 주세요!” 라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이 기도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