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애통하며 우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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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하나님 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은 애통하며 우는 자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하게 된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울며 애통해야 하는걸까요? 이 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주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죽을 것과 이 일을 통해 하나님과 주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에게 가시는 중엔 그가 이미 죽었고 주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실 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려주러 오신 주님은 왜 우셨을까요? 주님의 눈물에는 통분함과 민망함이 섞여 있었습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인간 전체의 불행을 보신 겁니다. 하나님께선 인간을 창조하실 때 특별한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심으로, 인간을 온 우주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세우셨고. 또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다스릴 권한도 주신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 계획대로라면, 인간은 에덴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는 에덴에서 쫓겨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채, 죄와 사망의 그늘에 묶여, 사탄의 노예로 사는 불행한 존재로 추락하고 만 겁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의 망가진 민낯을 보고 가슴이 아파 우셨고, 인간을 이 지경으로 만든 사탄에 대해 진노하셨던 겁니다.

우리는 주님의 눈물을 통해 회개의 눈물을 배우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자신의 죄를 품고 애통해야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멈춰서게 하고 후퇴하게 만드는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대해야 하는 겁니다. 애통한 마음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께선 우리를 용서하심으로 절대 위로를 부어주십니다.

주님께선 십자가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도착하신 날 두번째로 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3년 동안 가르치고 선포하셨지만, 그래도 돌아오지 않는 예루살렘 백성들을 바라보며 너무 마음이 아프신 겁니다. 이제 일주일 후면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 구원의 문이 열릴텐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거부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증명하는 표적들을 그들 앞에서 많이 행하셨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있는 겁니다. 이 땅을 떠나실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백성들이 변하질 않는 겁니다. 주님의 두번째 눈물은 구원을 모르는 잃은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말씀을 보면,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던 중, 바울이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에서 어떤 태도로 복음을 전했는지 세 개의 단어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겸손과 눈물과 인내. 눈물이 들어가 있는 겁니다. 바울은 에베소 도시의 잃은 영혼들이 불쌍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겁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이대로 죽으면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질 걸 알기에 너무나 안타까웠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처럼 에베소의 사람들을 눈물로 끌어안고 복음을 전했던 겁니다. 주님의 것을 닮은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선 에베소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의 영혼을 열어주셨습니다. 또한 아시아 전체에 복음이 왕성하게 퍼져나가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 엄청난 부흥의 사건은 바울에게 절대의 위로가 되었을 겁니다.

주님께선 믿음의 성도 모두에게 전도의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주님의 눈물을 품고 전도를 감당함으로, 잃은 영혼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초월적이고 완전하며 절대적인 행복에 싸여 크게 웃는 참제자들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