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545

이상기 목사/선한이웃 교회 담임/미육군 군목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회의가 듭니다.” “남의 옷이나 평생 빨면서, 이럴려고 미국에 왔나 생각해요.” “식구들 발도 만지지 않았는데, 하루종일 남의 발톱이나 깍아주며,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사는 게 진짜 잘 사는 건가요?” 이곳 미주땅에 사는 많은 이들에겐 이같은 물음은 철학적인 질문이기 보단, 힘들고 피곤한 삶이 가져다 준 실존적인 질문입니다. 매일 매일의 힘겨운 삶에 대해 의미를 되묻는 안타까운 절규입니다. 그 말속에서 마치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난파직전의 배와같이 위기앞에 선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그러기에 “너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주의하라!”(엡5:15)는 성경의 말씀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목마름에 생수를 구하듯 인생을 사는 참다운 지혜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도대체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이렇게 조언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먼저는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가 어떤 곳인가를 깨닫는 지혜가 필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악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는 도전도 유혹도 위험도 없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호숫가의 낭만과 같은 장소가 아님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가 걷는 인생은 거친 조류가 흐르고 파도가 몰아치는 도전이 넘실대는 세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어릴적 객기가 충만하여 모험을 즐겼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여름날 철원의 고석정에 피서를 갔습니다. 임꺽정이 놀았다는 고석정 주변은 한탄강의 물살이 대단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은 짓인듯 합니다. 함께간 친구와 그곳을 수영해 건너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입니다. 하도 물살이 빨라, 눈앞에 보이는 목표지점을 건너기위해선 강기슭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은 한없이 강의 하류로 떠내려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도전이 없는 삶은 없습니다. 그렇수록 건너야할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선, 거친 조류에도 떠내려 가지않는 인생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영원을 향해 떠나는 여정”(Journey to eternity)을 걷는 인생으로 우리를 초청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친 물살같은 악의 도전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생애는 너무나 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한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120년의 세월을 산 모세조차 인생을 가르켜 말하길,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 고백합니다. 마치 날아가듯 세월이 흐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쉬 지나가 버릴 이세상에 우리의 영원한 목표를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광야길을 걷는 것은 영원을 향해 떠나는 신앙인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굽에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곳이 없어서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 곳에서의 삶의 운명은 결국 사슬에 속박당한 노예의 인생였던 것입니다. 출애굽하여 광야를 걸을 지언정 그들이 걷는 한걸음 한걸음은 영원한 자유를 향한 여정였습니다.

우리는 이땅에 살아도 영원한 소망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세상을 넘어서는 여정입니다. 병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들을 지켜본 많은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증언합니다. 신앙인들이 대체로 평온히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비신앙들은 엄청난 죽음의 고통과 괴로움 안고 죽어가는 대조적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스도인들은 죽음을 마치 대관식을 기다리는 순간처럼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로다” (딤후 4:8) 죽음은 마치 승리의 왕관을 쓰는 순간이 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땅에서 한 순간을 살아도 영원에 잇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월은 악하며, 날아가듯 빠르게 지나갑니다. “세월을 아끼라” 는 말씀은 시간을 사라(purchase)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원을 향한 출발을 떠나야 할 결정적인 시간(kairos)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난 어떻게 살 것인가? 다시 묻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남의 손톱을 다듬으며, 때묻은 남의 옷을 빠는 일상을 살더래도,…내가 지향하는 바가 그저 먹고 사는 이생뿐이면 억울하기 한이 없습니다. 영원에 잇대어 있는 삶인가? 곧 믿음으로 걷는 여정인가? 소망을 이세상을 넘어 영원한 것에 두는 삶인가? 되묻게 됩니다. 지금이 바로 영원을 향해 거룩한 발걸음을 옮길 시간이요, 그것이 삶의 지혜인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