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머님 전 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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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전 상서

 

김성혜김성혜(문인)

 

아랫글은 한국서 초등학교 선생으로 일하다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하여 사는 전 선생이 필자의 아버지께 보내면서 내게도 카피를 보내 주신 편지다. 바쁜 연말과 새해, 잠시 숨돌리고 되돌아보는 시간, 또 내일을 생각하게 하는 듯 싶어 여기 옮긴다.

교수님, 내일이면 제 동생이 60입니다. 환갑잔치한다고 법석입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등에 지고 있던 쌀가마니를 드디어 내려놓는 기분입니다. 기쁘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해서 한참 울었습니다. 세살짜리를 두고 눈 감을 수 없으셨을 어머님 생각이 오늘따라 가슴에 절절했습니다. 그래 어머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이젠 어머님도 마음 놓고 눈을 감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쓰고 보니 보낼 주소가 마땅칠 않아 절 자식처럼 사랑해 주시는 교수님께 보냅니다.

“어머님,

세살짜리 일식일 두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하셨지요? 그래서 초등학생이던 제 손을 잡고 놓칠 못하셨지요? 그동안 일식을 보살피느라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일식이가 너무 어려서 어머니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것이 가슴 아파 어머니 이야길 틈틈이 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바라시는 그런 아들이 되어야 한다고도 늘 일렀습니다. 어머님이 제 손을 놓지 못하셨던 것이 그때문인줄 알았지요.

내일이면 녀석이 환갑입니다.

어머니, 이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일식이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랐고, 착하고 어진 아내 맞아 경이와 철일 낳았습니다. 경인 변호사로 영국 런던에 살고 있고, 철이도 좋은 직장 갖고 있답니다. 어머니, 흡족하시지요?

마음씨가 어머님 닮아 착하고 기특합니다. 어찌 보나 어머님 아들입니다. 하나만 말씀 드릴게요.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으니까요. 제가 캐나다로 이민 온 후 일식이도 이민 길을 터서 오게 했습니다. 다행히 자동차 정비회사 하는 분의 공장서 일하게 되었지요.

‘일식아, 영어도 서툴고 일도 모르는 너한테 일자리 주신 것을 감사히 알고 열심히 정성껏 일해라,’ 하고 단단히 일렀습니다. 녀석은 남들이 다 출근하는 7시가 아니고 6시에 출근해서 청소하고 그날 일거리 준비해 놓고, 또 퇴근도 남들 다 하는 5시가 아니라 6시 7시까지 남아 다 치우고 정리하고서야 집에 가곤 했답니다. 그런 직원을 본 적이 없는 주인이 경고하더랍니다. ‘네가 아무리 많은 시간 일 해도 돈을 더 줄 수는 없으니 그러지 말라’ 고 말입니다.

‘주인님, 천만에요. 영어도 못하고 기술도 없는 저를 써 주신 것 만도 고마운데 돈이라니요? 제가 해 드릴 게 없어서 청소라도 해야겠다 싶은 거니까 조금도 걱정 마십시오’ 하고 서툰 영어로 답했답니다. 열심히 일해 기술도 금방 배웠고, 부지런하고 성실히 일 한 덕에 얼마 안 가 그 회사의 중요 직원이 되었지요.

일식인 차가 없어서 걸어서 출퇴근하고 있었습니다. 매섭게 추운 겨울날 주인이 당신이 타던 차를 일식이 한테 주더랍니다. 놀란 동생이 ‘아닙니다, 주인님. 저는 얼마든지 걸어 출퇴근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했대요. 캐나다의 겨울은 무척 어둡고, 춥고, 한없이 길거든요.

‘난 어차피 새 차를 살 거니까 이건 네가 가져도 된다’ 주인이 말하더랍니다.

‘정말요? 그러면 이 차를 제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다른 사람 줘도 되겠습니까? 실은 저희 교회 목사님 차가 너무 낡아 고생하시는데 이 차를 드리면 요긴하게 잘 쓰실 겁니다.’

그렇게 받은 차를 목사님 드린 녀석이 어머님 아들입니다. 그렇게 잘 자라준 일식이 이야길 들으시니까 어머님 마음도 든든하시지요? 이젠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2016년 새해 아침. 어머니께 편지 드리고 싶은 이 마음…. 난 어떤 이야길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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