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적인 트리거(Spiritual Trig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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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 시카고 기쁨의 교회

미국의 유명한 리더십 전문가인 마셜 골드스미스(Marshall Goldsmith)는 트리거(Trigger, 방아쇠)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만드는 심리적 자극”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일상의 자질구레한 습관에서부터 가정과 직장의 생활, 다양한 인간 관계에까지 인간의 삶에 완전한 변화를 이루게 하는 트리거를 경험한다. 옆집에서 베이컨을 굽는 냄새가 솔솔 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들도 어느 새 더블 치즈 베이컨 버거를 입에 물게 되고, 길을 가다가 갑자기 쿵 소리가 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움츠리게 되는 현상을 트리거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건들 속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만들어 내도록 자극한 초기 현상을 “트리거”라고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 속에서 다양한 트리거의 현상이 존재하는 만큼, 영적 구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도 심리적 자극 이상의 영적인 상징과 이미지, 메시지와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영적인 트리거”(Spiritual Trigger)로 불려질 수 있다. 하나님을 믿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특정의 사람과의 만남이나 특별한 책을 선택하게 된 계기, 그리고 신앙심을 갖게 한 대화나 토론, 꿈이나 환상 등이 영적인 트리거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런 영적인 트리거 없이 신앙인이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리스도인들도 각자의 영적인 트리거를 경험하고 종교적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너는 너희 본토 부모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트리거를 들었고, 모세는 불 타는 떨기 나무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트리거를 경험했으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중, 핍박 받는 예수를 만나 인생의 전환과 완전히 다른 변화를 겪었다.

당신은 이런 영적인 트리거를 가지고 있는가? 종교적 구도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거의 대체로 나름의 영적인 트리거를 가지고 있다. 상징과 이미지, 메시지와 신비적 현상 등이 종교적 트리거로 경험 되어진다.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말 할 수는 없다. 각자의 경험과 상황 속에 주어진 영적인 트리거는 모두가 옳으나, 동시에 모두를 향해서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개인의 종교적 체험과 같은 트리거는 각자의 소중한 경험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영적 공동체인 교회는 공공 신앙의 트리거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각 지파의 숫자를 세며 광야로의 출발을 준비할 때, 하나님은 은 나팔 두 개를 두들겨 만들어서 모든 백성의 오고 가는 것을 지시하도록 했다.(민 10:2) 그리고 나팔 두 개를 동시에 불 때에는 모든 백성이 회막 문 앞에 나아가도록 했고, 하나만 불 때에는 지도자들만을 모이게 했다. 크게 불 때에는 동쪽 진영의 지파들이 행진했고, 두 번째로 크게 불 때에는 남쪽 진영들이 진행하도록 했다. 광야 길 앞에 “나팔”은 곧 공공 신앙의 트리거와 비슷한 것이다.

나팔 소리가 들리면 가고, 다른 나팔 소리가 울리면 멈추는 것처럼, 영적인 트리거는 때로 신앙 공동체에 특별한 자극과 변화를 주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구름”을 영적인 트리거로 삼고 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기도 가운데 구름의 이동을 보고 창조주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고자 노력한다. 더불어 많은 교회들도 이런 영적인 트리거가 필요하다. 광야의 길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던 구름과 불 기둥과 같이, 하나님의 뜻과 방향이 분명한 것들을 붙잡고자 하는 많은 이민 디아스포라(흩어진) 교회들이 나와야 한다. 이제는 각자 개인에게 주어진 영적 트리거를 넘어, 함께 경험하고 변화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같은 공공 신앙의 트리거를 분별하도록 해야 한다. 이제 한 두 사람의 영향력과 주도권으로 움직이는 교회는 곧 폭망할 것이다. 교회만 그럴 것 같은가? 모든 공동체도 동일한 운명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공유하는 공공의 영적 트리거를 함께 붙잡고 갈 때, 새로운 시대의 개혁과 진보, 변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