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예수님의 첫 차 포니(p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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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한국 자동차산업의 자립을 선언한 차종으로 한국 자동차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차가 있습니다. 이는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한 현대 포니(Hyundai Pony)입니다. 포니는 1975년부터 1990년까지 현대자동차가 생산한 후륜구동 소형차이며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자동차입니다. 포니라는 차명은 당시 공모를 통해 지었는데 차명인 포니는 ‘조랑말’을 뜻하는 영어 단어 ‘pony’입니다. 이렇게 현대의 포니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울러 저에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의 첫 차였기 때문입니다. 저의 유년 시절 서울에서 우유대리점을 운영하시던 아버지가 우유를 배달하시기 위하여 포니 픽업을 구입하셨습니다. 포니 픽업은 화물 적재 공간 때문에 2열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저 그리고 제 동생과 어머니가 다같이 1열에 옹기종기 앉아서 이곳 저곳을 다니던 어릴 적 추억이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가족은 자동차로 좀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작년에 대학에 진학한 아들 녀석이 자동차를 한 대 가지고 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둘째 딸아이가 운전면허를 취득했다는 것입니다. 차 한대로 저와 제 아내 그리고 딸 아이까지 세 명이 차를 쉐어하고 있으니 불편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사치품이 아닌 이동을 위한 필수품이기 때문에 운전면허증을 취득한 고등학생 자녀에게 자동차를 사주는 것은 흔한 모습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자녀들에게 차를 한 대씩 사주면 좋으련만 부모 마음에 운전면허를 딴 자녀들에게 차를 사주고 싶은 마음이야 매 한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도 보니 자녀들에게 차를 사주고 싶어하는 부모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사기의 기록에 보면 사사 야일은 그의 아들들이 삼십명이나 되었는데 그들에게 모두 어린 나귀를 타게 하였습니다(삿 10:3-4). 그리고 사사 압돈은 한 술 더 떠서 그의 아들 사십명과 손자 삼십명에게 어린 나귀 칠십 필을 구하여 타게 하였습니다(삿 12:13-14). 나귀는 고대 근동에서 매우 귀한 재산의 목록이었고 아울러 나귀를 탄다는 것은 그 만큼 부와 지위가 높다는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자녀들에게 나귀를 30필, 70필씩 구하여 타게 했으니 그 사사들의 부가 대단했음을 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그 어린 자녀들은 최고급 세단을 그들의 첫 차로 탔다고 볼 수 있겠지요.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마 21:1~2)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보면 뒤늦게 처음으로 첫 차를 타시는 한 분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도보로 여행을 하셨습니다. 한번도 짐승을 타신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셨던 예수님께서 지금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니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의 마음 한편에는 큰 기대와 즐거움이 용솟음쳤습니다. 그들이 그렇게도 오매불망 바라던대로 드디어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이 유대의 왕임을 선언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찼습니다. 왜냐하면 왕이 입성할 때에 나귀를 타는 것이 유대의 전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겉옷을 벗어서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라고 외치며 흥겨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타신 첫 차, 그분이 타신 나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심은 왕의 즉위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심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보면서 질시에 눈이 먼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그분을 죽이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입니다(요 12:19). 예수님이 타신 첫 차, 그분이 타신 나귀는 결국 그분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약해 놓으신 당신의 아들 예수의 첫 차, 그 나귀는 그분의 죽음을 위해 렌트 된 차였습니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이미 구약의 선지자 스가랴로 말미암아 그분이 나귀를 타실 것인데 그것은 피의 언약을 위한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저 포니를 타면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그 빌리신 나귀를 타셨습니다. 누구를 위함이었습니까? 오늘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 우리가 당해야 할 고통, 우리가 겪어야 할 고난을 그분이 대신 겪으시고 당하시고 죽으시기 위하여 그 나귀의 등에 오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차 포니는 우리를 살리기 위한 죽음의 렌트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