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외식이라는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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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시카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십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은 뭘 뜻하는 걸까요? 주님께서 외식, 위선이라고 풀어주셨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외식의 사례들을 통해 교훈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선 바리새인들이 행하는 세 종류의 외식을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구제할 때 나팔을 불어 자신의 선행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기도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거나 오가는 회당이나 큰 거리의 어귀를 장소로 선택했습니다. 금식할 때면 누가봐도 금식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는 몰골로 거리를 다닙니다. 이런 외식의 병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보다는 사람들이 보는 눈을 더 의식하고 사람들의 칭찬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병입니다. 2010년 중반부터는 이런 사람들을 관심종자, 줄여서 관종이라고 부릅니다. 요즘 교회 안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기 P.R. 시대와 맞물려서 더 많아지는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 처방은 뭘까요? 하나님만 아시도록 은밀하게 하고, 하나님만 아신다는 사실 하나로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겁니다.

두 번 째 사례는 누가복음 10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안에 외식병에 걸린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한 유대인이 강도를 만나 가진 것 다 빼앗기고, 얻어터져 거의 죽게 된 상태로 버려집니다. 이때 한 제사장이 그 길을 가다가 그를 보고도 모르는 척 지나쳐버립니다. 다음 등장한 레위인도 피해 갑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거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전과 관련된 일은 그들만이 감당할 수 있었고, 각 지파가 나누어준 땅에 흩어져 거하면서 그 지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했습니다. 비유 속 제사장과 레위인도 성전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또한 가르쳤을 겁니다. 그런데 성전 밖에선 강도 만난 불쌍한 자를 외면하고 도망가버리고 만 겁니다. 이런 외식의 병명은 세상에만 나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병입니다. 처방전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항상 함께 하고 계시고, 또한 나를 지켜보고 계심을 잊지 않는 겁니다. 가끔씩 자신을 향해 “주님 보신다.”라고 속삭이면 됩니다. 이 문장이 너무 길다고 생각되면, 그냥 “주님!”하고 부르면 됩니다

마지막 사례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을 보면, 바울이 베드로를 외식하는 자라고 꾸짖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이 감히 베드로에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말씀에 근거해서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 중심으로 세워진 안디옥 교회를 방문해 이방 출신 성도들과 함께 식사하며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교회에서 보낸 유대인 출신 성도들이 그곳에 도착한 겁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갑자기 이방인들과 함께 있던 자리를 떠나 따로 앉고 맙니다. 베드로는, 조금 전까지  이방 성도들과 교제한 것이 진심인지, 할례자들 때문에 두려워 그 자리를 피한 것이 진심인지 모를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 겁니다. 이런 외식의 병명은 믿기 전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에 여전히 묶여있는 병입니다. 처방은 말씀과 기도로 우리 안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철저히 뽑아내는 겁니다.

미국의 기독교 전문 리서치 그룹인 바나의 조사에 따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들 중 가장 큰 이유가 교인들의 위선적인 삶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경고하신 바리새인의 누룩으로 인해 우리 시대의 교회가 심각한 병에 걸려있는 겁니다. 우리 모두 외식병에서 벗어나 건강한 영성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