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가 만든 신(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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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것 같습니다. 텅 빈 집안에 홀로 남아있으면 갑자기 무서움과 외로움이 찾아옵니다. 밤을 혼자서 지내게 될 때는 괜한 공포심에 밤잠을 설치게 되기도 합니다. 집안에 어린 애라도 있던 지, 심지어 강아지라도 함께 있으면 그것이 의지가 되기도 합니다.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머물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오랜 기간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불안감과 두려움이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형제인 아론에게 그들은 이렇게 부탁합니다: “우리를 위해 신(神)을 만들어 주시오!” (“Make gods for us!”) 아론은 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백성들이 귀에 걸고있는 모든 금부치를 모아 “황금 송아지”를 만들게 됩니다. 마치 그것은 종살이하며 익히 보았던 애굽의 신, 아피스의 형상을 한 번쩍거리는 금송아지(Golden Bull)였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향해 ‘이는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 이리고 소리치며 춤추며, 광야에서 광란의 밤을 지새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려움이 만들어낸 그들의 신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과 무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출32장)

시내산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처럼 황금 송아지를 숭배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인생속에 많은 신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숭배하며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부모에게는 자식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펼치고 싶었던 꿈과 야망을 자식에게 고스란히 덮어씌워 놓고 인생의 모든 희망을 거기에 걸고 살아갑니다. 아마도 그 같은 부모를 둔 자식은 부모에게 감사하기 보다는 오히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자신을 바라보며 황패하고 불행한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만든 신”의 저자인 팀 켈러는 “로맨틱한 사랑의 관계”가 끔찍한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그가 상담한 셀리라는 여성은 미모가 출중할 정도로 예쁜 여성이었습니다. 자신의 미모로 인해 어려서부터 많은 남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왔고, 셀리도 그 같은 관심속에 인생의 의미를 찾았습니다. 불행한 사실은 한 순간이래도 남성들의 관심과 관계를 잃게 될 때, 견딜 수 없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에게 이 같은 로맨틱한 인간관계는 자신을 노예로 만드는 그녀가 만든 신, 곧 그녀의 우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중, “왕이 초청한 혼인잔치”의 이야기에서는 우리의 삶속에서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일상의 우상들”을 소개합니다. 이 비유의 내용을 보면, 왕이 성대한 잔치를 준비해 놓고, 정중히 손님들을 초청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같이 초청받은 이들의 반응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예 왕의 초청에 관심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부지런히 농장으로 가버렸습니다. 또 다른 이는 바쁘다며 그의 사업장으로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초청장을 들고온 사람을 괜히 해코지하며 모욕을 주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의 교훈은 하나님의 나라에 초청받은 이들이 게으르거나, 나태해서 잔치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청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영적세계에 대한 무관심”을 고발하는 내용입니다. (마22장) 마치 홍수가 지면을 덮었던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들, 곧 “일상의 분주함”이 그들의 삶에 세계의 전부였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빠졌던 “Laodiceanism” 즉, “영적 무감각증”(spiritual indifference)에 깊이 빠진 모습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불행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가난하며, 헐벗고 굶주려 있는 존재인가를 보지 못하였다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눈앞에 보이는 일상의 것들에 마음이 다 빼앗겨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초청”에 귀를 귀울이지도 듣지도 못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일상은 나도 모르게 내가 만든 신이요, 그것들에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수많은 일들과 형상들, 그 너머에 더 크고 높고 깊은 하나님의 존재가 있음을, 하나님의 손끝이 여전히 우리에게 닿아 있음을 깨닫는 우리의 영혼이 살아있는 감각을 지니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치 시편에 소개된 신앙인이 가졌던 눈과 귀가 분주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새롭게 띄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편 8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