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월리, 고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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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시카고)

요즘 월리 때문에 생활 패턴이 큰 폭으로 수정되었습니다. 월리는 4월까지 함께 지내야 할 손님 입니다.

12월 성탄절을 집에서 보낼 수 있게 된 큰 딸이 집사람을 통해 조심스럽게 물어왔습니다. “몇 개월만 월리를 맡아주면 안 될까요?” 요즘 너무 바빠서 주일도 없이 일하는데다가 2월 초엔 인터뷰를 위해 씨애틀을 방문해야 하고 2월 중순부터 한달 동안은 병원 프로젝트로 에디오피아를 다녀와야 하고 4월에는 남편과 함께 한국을 여행할 계획이라 월리를 돌볼 틈이 없다는 겁니다. 친구 집에 맡겨보려고도 했지만 너무 기간이 길어서 망설여진다고 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에 피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집에 손님으로 온 월리는 생후 8개월된 강아지 입니다. 공항에서 딸과 녀석을 데리고 집에 오는데 ‘고생 좀 하겠구나. 녀석과 어떻게 친해지지?’ 이런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집 안에서 동물을 키우는 건 딱 질색이라 거절할 수 없는 부탁 때문에 마지못해 두어 번 그것도 길어봐야 한 달 정도 키워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동거가 벌써 한 달쯤 되었습니다.

처음 이 주 동안은 대소변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녀석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밖에 나가야 하는데 고 때를 못 맞춰서 몇 차례 난처한 일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하필 올겨울 가장 추운 때라 데리고 나갈 때마다 동장군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 작업에 꼭 필요한 장비는 인내심 입니다. 특히 깊은 밤이나 이른 새벽 칼바람은 불어대는데 녀석의 배변이 평소 보다 많이 늦어질 때면 더. J 그래도 한 달 정도 동거하는 동안 제법 정이 들었습니다. 침대에서 함께 자고, 밥이나 간식을 줄 때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모양을 보고, 설교 준비할 때면 발밑에 와서 조용히 누워있다가 다 마치고 침실로 올라갈 때서야 자기도 몸을 일으키는 걸 지켜보는 동안 어느새 정이 든 모양입니다. 땅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 깊이가 월리 덕에 조금 더 깊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월리 때문에 얻은 소소한 깨달음도 있습니다.

한 이주 전쯤 타운 관리소에서 이메일이 왔습니다. 개 주인들에게 똥을 꼭 치워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같은 불만을 갖고 있던터라 아주 잘 공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월리의 볼 일 때문에 나가보면 곳곳에 흉칙하게 널려있는 장면을 비일비재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미국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은 월리의 변인 줄 알고 다른 녀석의 것을 집어들고 얼마나 황망해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깊은 밤 월리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녀석이 기분좋게 일을 보고 있는 동안 뒷처리에 필요한 플라스틱 백의 입구를 열고 있었습니다. 일 이 분 정도 씨름한 후에야 입구에 손을 끼워넣을 수 있었습니다. 녀석이 앉았던 곳으로 짐작되는 잔디밭으로 다가갔는데…아뿔싸 보이질 않는 겁니다. 며칠 훈훈한 기온에 비까지 내려 흰눈 사라진 잔디밭은 녀석의 것을 꽁꽁 숨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가로등도 없으니…10분 정도를 찾아 해매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서야 치울 수 있었습니다.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이 생각나더군요. 이 사건 후 잔디밭에 널브러져있는 그것들(?)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좀 누그러졌습니다.

월리, 고놈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