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령을 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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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이웃교회 담임/ 미육군 군목)

 

끔찍한 인생의 고통스런 사건으로부터 얻은 트라우마는 평생을 괴롭히는 인간내면의 아픈 성처입니다. 그 과거의 끔찍한 고통은 현실의 삶에 지속적으로 재현(플래쉬백)되어 불행한 인생의 길을 걷게 만듭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외상후증후군이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이같은 경험은 개인뿐만아니라 집단적으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요즘 북의 김정은과 문대통령과 만남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우리 조국엔 벌써부터 영구적 평화가 찾아온냥 들떠있습니다. 물론 이같은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서 좌우로 고개를 흔들 뿐, 또다시 거짓평화에 절대 속지 말아야된다는 분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아마도 민족상잔의 뼈아픈 과거를 겪은 기성세대의 뇌리안엔 여전히 집단적 외상후증후군의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 사이엔 북한의 비핵화의 진정성을 알기위해선 세부적인 이행과정 즉, 디테일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북의 지도자간 만남이든, 미북간의 만남이든 두지도자들의 만남은 큰그림에 대한 협약일 뿐이고, 자국의 정치적인 입지를 넓히기위한 정치적 만남으로 끝나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비핵화에 있어 정작 문제는 디테일에 있고, 그러기에 그들은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밤바다의 풍랑속에 갇힌 제자들”에 관한 성경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이 겪는 공포와 두려움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왜곡시킬 수 있는가를 보게되었습니다. (마태1:13-33)이 거친 풍랑의 밤바다에 나오기 직전 제자들은 벳세다 푸른 잔디밭에 앉아 주님으로부터 온종일 천국의 말씀을 들으며, 오천여명의 사람들이 물고기 두마리와 떡덩이 다섯개로 배부르게 먹고도 남는 기적의 사건을 체험했습니다. 잔디밭에 앉아 주님앞에 말씀을 들을 때, 떡과 생선으로 친교를 나누며 잔잔한 바다를 배경으로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곳에서 함께한 사람들과 소망을 나눌 땐 아마도 오랜기간 잃어버렸던 이스라엘의 평화가 손에 잡힐 듯 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문제는 이 은혜의 동산을 내려와 거친 바다를 항해할 때 찾아왔습니다. 저녁에 출발한 항해가 새벽이 가까이온 깊은 밤까지 제자들은 바다한가운데서 거친 풍랑과 싸우며, 넋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풍랑의 바다에 돌연히 나타난 예수님조차 그들에겐 믿을 수 없는 유령으로 여겨, 두려움으로 소리질렀다고 성경은 이야기해 줍니다. 마치 지나친 투라우마를 겪은후에 찾아오는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이해처럼, 제자들의 생각과 눈엔 자신앞에 서계신 주님의 임재를 볼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간혹 우리의 신앙생활도 유령을 본 사람들처럼, 푸른 초장에 대중과 함께 서계신 예수님만 알뿐, 거친 풍랑의 밤바다에 찾아오시는 예수를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정작 우리가 깨달아야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의 숨가쁜 일상속에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곧, 하나님은 우리의 디테일에 계십니다(God is in the details.)

 

이같은 주님은 우리 인생의 불가능한 가능(the impossible possibility)입니다. 그분은 고통과 상처,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제자로하여금 바다를 걷게하십니다. 그 꿈같은 기적의 원인은 주님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Take courage! It is I) 인생의 어떠한 풍랑의 바다라도 우리가 기적적으로 걸을 수 있음은 나때문이 아닌 주님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삶의 디테일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와 실패로인해 수많은 날들을 두려움가운데 살며 유령을 보아왔지만, 이젠 우리의 풍랑의 바다를 헤치고 찾아오신 분이 주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성경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꿏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주님으로인해 우리는 물위를 걸을 뿐아니라, 물 가운데로도, 불가운데로도 걸어가는 인생의 기적을 만드는 주님의 자제들입니다. 아멘!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