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은혜를 걸친 사람인가? 입은 사람인가?

1998

서상규 목사/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담임

오랜 전부터 인간은 의복을 만드는 재료로 동물의 가죽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옷을 만드는 가장 고급진 재료 또한 동물의 가죽, 피혁(皮革)원단입니다. 다양한 동물이 피혁원단의 재료로 사용되어 지고 있는데요. 소, 말, 산양, 면양, 돼지 뿐만 아니라 악어나 뱀같은 것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동물들이 사용되어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고급 재료로 취급 받는 것은 가벼울 뿐만 아니라 부드러운 촉감이 일품인 양 가죽입니다. 특별히 양 가죽을 가장 잘 다루는 나라로 유명한 이태리에서 생산한 양 가죽은 국제섬유시장에서 가장 고가로 판매되고 있다고 합니다. 양 가죽도 어린 양과 늙은 양으로 나누어지는데 식용으로 주로 이용되는 어린 양의 가죽이 고급의류용으로 사용되어집니다. 늙은 양의 경우 양모 사용을 위해 수 년 동안 사육되기 때문에 가죽에 흠이 많고 질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물론 양 가죽 의류가 가장 좋은 옷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입기를 원하는 옷은 그런 양 가죽 옷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적인 가죽 옷, 곧 어린 양 되시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으로 말미암아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떨고 있던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그때의 가죽 옷은 창세로 부터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의 가죽이었습니다(계 13:8). 그 이후로 모든 죄인들은 죄의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옷을 입어야 했는데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그분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갈 3:27).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가죽옷은 이 세상에서는 결코 구할 수 없는 최고의 옷입니다. 그분의 옷을 입은 자, 곧 칭의를 경험한 자에게는 구원과 영생의 축복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옷입니까! 아울러 우리에게 그 가죽 옷을 입히시기 위하여 그분의 옷이 벗겨졌고, 그분의 살가죽이 찢기시는 고통과 피 흘림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그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그 은혜의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라 걸친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입다’와 ‘걸치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입기’보다는 ‘걸치기’가 쉽습니다. ‘옷을 입는다’와  ‘옷을 걸친다’를 비교하여 생각해 볼 때 앞엣것은 웬지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지고 뒤엣 것은 비교적 가볍게 해낼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옷을 입으려면 어느 정도의 주의와 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지만, 옷을 걸치는 데에는 별로 힘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걸치다’는 ‘부분’, ‘입다’는 ‘전체’를 표현한다고 합니다. ‘의자에 엉덩이를 걸친다’는 표현도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엉덩이를 깊이 들이밀어 몸 전체를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다소 불편하게 의자의 끝에 살짝 걸터앉은 모습으로 오래 앉아 있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다’는 ‘은혜를 입는다’나 ‘피해를 입는다’와 같이 온전히 전체적이고 본격적이며 전면적인 성질을 띠게 됩니다.(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中에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까? 아니며 그저 걸치고 있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종종 주님의 은혜를 걸친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마치 잠깐 추위를 피하려고 어깨에 살짝 걸친 겉옷 처럼 우리에게 어려움이 밀려 오거나 시험이 닥칠 때에만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그러다가 그 어려움과 시험이 지나가면 더 이상 필요 없어 짐이 되어 버린 겉옷을 벗어 던지듯이 주님의 은혜를 벗어 버립니다. 잠깐 덕을 보려고 주님의 은혜를 걸쳤을 뿐 언제든지 필요하지 않으면 벗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의의 옷 곧 어린 양의 가죽옷을 입은 자들을 데리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때에는 어린 양의 흰 옷을 입은 자들만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되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이 추운 겨울 우리가 외투를 든든히 챙겨 입듯이 우리는 은혜의 옷깃을 더 단단히 여미고 단추를 꼼꼼히 채워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걸친 사람이 아니라 온전히 입은 사람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