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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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수 목사(순복음충만교회)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번씩은 극도로 굶주려 보신 적이 있었을것입니다. 또는 목이 극심할 정도로 타들어가 갈증으로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경험을 해 보았을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그것이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주리고 목이 마른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설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단서가 있습니다. 바로 ‘의’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생명이 먹을 것과 마실 것에 의존하듯이 영혼의 생명은 ‘의’에 의존합니다. 예수님은 최우선적으로 ‘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교훈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앞서 이를 삶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가 무엇입니까?. ‘의’는 하나님의 의를 가리키는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고 이때부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거룩하게 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더 깊은 관계를 맺게됩니다.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의롭다 하는 사람은 찾지 않으십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죄인이라 하며 진심으로 회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만나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의롭다 여겨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인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것에 욕망이 없다. 죄악된 쾌락에 너무 깊이 빠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도 많은 사탄의 산해진미를 먹어 왔기 때문이다.” 이 말은 사람들이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더 이상 하나님의 의에 대한 열망은 없고, 세상에 대한 끊임없는 주림과 목마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열망이 우리의 갈망이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한 열망으로 바뀔 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영적 암흑기 시대가 있는데 바로 사사시대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각기 자신의 소견대로 행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선지자로 세우시기 전 제사장직을 행했던 사람이 엘리제사장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이 제사장 직무를 담당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갈취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혼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수종을 드는 여종들에게 성추행을 일삼았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중에 좋은 것은 자신들이 갈취하고 좋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엘리는 자신이 영적으로 얼마나 둔감해졌는지에 대해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이 죄를 짓고 있어도 내버려 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셔서 언약궤를 빼앗아가게 하시고 그 아들들도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엘리는 그 비보를 전해들을 때 그가 자기 의자에 앉아있다가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삼4:18).

그냥 그가 비만에 걸려서 죽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의 영적 무뎌짐과 세상에 대한 탐심에 그의 영적인 주림과 갈망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배고파야 양식을 찾습니다. 목이 말라야 마실 것을 찾습니다. 그 양식은 하늘의 양식이신 예수님이며 그 물은 주님이 주시는 영원히 목마름이 없는 생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에 주림이 복이 되고 목마름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을 영원한 하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원한 생수의 강물로 갈증을 해소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