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의의 딜레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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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국 목사(횃불트리니티 총장 어시스턴트/횃불재단 DMIN 스태프)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요, 주의 길을 예배하는 자요, 오기로 약속된 엘리야요, 메시야의 그림자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천국을 준비하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마 3:13).

많은 사람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다. 이때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러 나온다. 천국을 건설하러 오신 예수님의 첫 등장이 세례받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 질문이 생긴다. 예수님이 과연 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요한이 준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가? 확실히 요한의 세례는 회개와        죄 용서를 나타낸다. 요한의 외침을 살펴보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사람들이 회개하며 요한에게 오면 그는 물로 세례를 주고 그들의 죄는 용서 받는다. 세례는 죄로부터의 씻음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질문이 생긴다. ‘예수님도 죄로부터 씻김을 받아야 했는가? 왜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셨는가?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죄인이란 말인가? 아니라면, 도대체 왜?’

요한도 같은 의문이 들었다.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 3:14).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잘 알았다. 그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았다. 모친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알았다.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눅 1:44). 요한은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수님은 회개해야 할 죄가 없다. 또한 그는 예수님이 약속의 메시야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세례받아야 할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머뭇거리며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님이 대답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 3:15). 예수님은 요한이 세례 주는 것을 허락한다. 왜 그런가?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다  (마 3:15).

예수님은 세례받을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씻을 죄가 없고, 완벽하고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례를 주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다. “의”란 무엇인가? 의를 이룬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의는 한자로 ‘옳을 의’인데, 성경에서 여러 가지 뜻이 있다. 먼저 법정적 의미의 의가 있다. 누군가 어떤 죄를 지어서 기소되어 지금 법정에 섰다고 가정하자. 판사는 그 사람의 죄 값에 대한 벌을 준다. 만약 판사가 공정한 사람이라면 죄값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벌을 줄 것이다. 그러면 의가 실행된다. 이런 의를 가리켜 정의라고 한다. 이것이 의에 대한 기본적 이해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