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름없이 빛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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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용 목사(시카고 기쁨의교회 담임)

 

새찬송가 325장 ‘부름받아 나선 이 몸’의 3절 가사를 보면, “존귀영광 모든권세 주님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지고 가오리다  이름없이 빛도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없이 빛도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라고 나온다. 후렴구에 “이름없이 빛도없이”처럼 우리도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실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이름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다고 그리스도인이 된 후, 우리는 그 반대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대형교회 목사가 고급 승용차를 타려고 하니, 수많은 목회자들이 조폭 사열하듯 서서 배웅하는 모습을 보고 한 선배 목회자가, “저 목사는 이 땅에서영광을 다 받고 있으니 천국에 갈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씀하시면 씁쓸해 하셨던 표정이 기억이 난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사실 처음에는 훗날 자신들이 이렇게 영광을 받을 존재가 될지 모르고 하나님의 일에 충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이름이 오르면서 그들은 큰 영광이 이 땅과 하늘에서 드러났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름만 기록되어 있을 뿐, 325장의 찬양대로 이름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한 두 사람이 있다. 바로 유스도라 하는 요셉과 맛디아이다.

예수가 죽고 부활한 후, 승천하면서 성령을 보내시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함께 기도하며 성령을 기다리던 중, 12명의 제자 중 가롯유다의 죽음으로 비워진 한 자리를 채우기로 결정한다. 두 명의 후보를 세웠는데, 하나는 유스도라 하는 요셉과 다른 하나는 맛디아였다. 그리고 제비뽑기를 통해 맛디아가 12번 째 새로운 제자로 뽑혔다.

그러나 이후 성경에는 맛디아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일부 전승으로 터키 중앙 지역에 선교를 떠나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순교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유스도라 하는 요셉에 대한 이야기도 거기까지이다. 어찌 보면, 요셉은 부정적인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민교회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공정한 교회 선거에 자신이 선출되지 않았다고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이상한 트집을 잡는 등 이름을 내고 싶어 하고 빛을 받고 싶어하지만 그러지 못해 분노하는 잘못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유스도라 하는 요셉은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325장의 찬양대로 이름없이 빛도 없이 본연의 자리에서 충성하는 또 다른 제자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또한 맛디아도 12번째 제자가 되었지만 그는 성경 어디에도 영광스러운 일로 기록된 것이 없다. 기분이 안 좋거나 불평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늦게 되었다고 무시하는 것이냐? 12번째라고 차별하는 것이냐?” 등등으로 말이다. 그러나 맛디아도 그런 문제를 일으켰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이름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는 자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랬기에 초대교회는 부흥을 이뤘고 지금에까지 교회의 역사가 이어져 왔다고 믿는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지금의 사역을 감당하자. 직분 받으려고 수고하지 말라. 직분 없이 충성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 이름 내려고 얼굴 내밀지 말라. 이름없이 헌신하는 자를 주님은 기억하시리라. 목소리 크게 내며 교회일 한다고 하지 말라. 골방에서 눈물로 소명에 응답하는 자를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지금의 일을 섬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