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삿짐을 정리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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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길은 9세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알려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많은 순례객들이 오가기 시작했던 길입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 여서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각지에서 출발할 수 있는데 모두 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매일 20키로씩 30여일을 꼬박 걸어야 하는 쉽지 않는 코스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곤혹스러운 건 30여 일간 사용할 모든 물건을 등에 짊어지고 걸어야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최소한의 짐을 싸야 하는데 출발 전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너무 많은 짐을 가지고 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행이 3일째쯤 되었을 때 자신들의 모든 물건들을 탈탈 털어놓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꼭 가져가야 할 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모두 짊어지고 갈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는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세기 12:1)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지금의 말씀은 권유나, 부탁이나,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명령이었습니다. 그의 명령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라’는 말의 히브리어 ‘얄라크’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버리다’, ‘포기하다’ 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을 떠나라고 하는 이사를 명하시면서 함께 주신 말씀은 다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너의 본토, 이는 곧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의 소유와 부를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친척을 떠나라는 것은 생명을 버리라는 의미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친족공동체 사회였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안전과 보호를 보장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즉시 다른 부족에 의한 약탈과 위협에 노출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대근동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은 추방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은 당시 사회가 족장 사회였음을 생각해 볼 때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목 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불려 질 때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 보다는 ‘누구의 아들’로 불려졌기 때문입니다. 나의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 ‘나’라고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결정되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아버지 집을 버리라고 하시니 이 말은 너의 존재, 너가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성 마저 버리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사를 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지만 사실 우리도 이사를 하게 되면 짐을 정리하면서 많은 것을 버리게 됩니다. 사람이 한 곳에서 10년, 20년 수년을 살다 보면 이러 저러한 물건들이 많이 쌓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마련한 것들이 세월의 흐름 속에 어느 덧 깊은 창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먼지만 뒤집어 쓰게 되기도 하고, 그냥 살 때는 몰랐는데 이사를 가려고 생각하니 사용하던 소파며 가구들도 낡아져서 이걸 싸 짊어지고 가느니 새로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들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버려야겠다 생각하면서 많이 버리면서 짐을 쌌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삿날이 되어 짐을 꺼내어 보면 어디서 자꾸 자꾸 짐들이 나오는지. 그런데 사실 이삿짐을 싸고 인생의 짐을 싸는 것은 단순히 물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 곳에 살면서 지나온 시간 속에서 울고, 웃고, 슬퍼하고, 위로 받으며, 때로는 화나고 속상했던 감정의 짐들도 남겨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새것이 나고 웃으며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다음 걸음이 훨씬 가뿐하고 홀가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침례교회의 선교사로 에콰도르 원주민에게 선교하다 순교하신 짐 엘리엇 선교사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하여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인생의 이삿짐을 싸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버릴 것과 가져가야 할 것을 결정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영원한 것을 주시기 위하여 지금 너가 가지고 있는 것, 누려왔던 것, 그것이 아무리 좋아 보이는 것일지라도 미련없이 버리고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땅, 새 생명, 새 이름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짊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 버거워 허덕이지 말고 지금 이라도 짐을 내려, 버려야 할 것들을 버리고 가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짐, 감정의 짐, 관계의 짐, 죄의 짐, 세상 것들의 짐들을 다 버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더 나은 본향”(히 11:16)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