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권 퇴진’과 ‘주의 보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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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환 목사(시카고기쁨의교회 담임)

2017년 5월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톤 DC에서 열린 국가 기도의 날 행사에서 ‘종교 자유 보호에 관한 행정 명령(Religious-Liberty Executive Order)’에 사인했다. 미국은 1954년 제정된 ‘존슨 수정 조항(The Johnson Amendment)’에 의거하여 성직자나 교회 등 종교단체의 정치 활동을 금하고 있다. 정교 분리 정신에 입각한 이 조항을 어기고 특정 정치인을 지지 혹은 반대하는 발언이나 활동을 할 경우 면세 혜택을 박탈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존슨 조항의 완전한 폐지를 통해 미국인들의 종교 자유가 위협받지 않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환영하며 이 행정명령에 대한 반가움을 표하였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자유를 보장 받았으니 좋은 일이 아닌가. 예를 들어, 기독교적 정신에 위배된다고 여겨지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해 반대하는 설교를 어떤 법적 제재 없이 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흔한 예상과는 달리, 조지 워싱톤이나 토마스 제퍼슨 같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The Founding Fathers)’은 미국을 온전한 ‘세속적’ 가치, 즉 비종교적인 가치 위에 세우고자 했다. 종교적 자유와 시민적 자유를 분리하고, 연방 정치와 행정으로부터 종교를 완전 배제시키려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와 국가 사이의 철저한 분리를 목적으로 1791년 채택된 [수정 헌법 제 1조]의 배경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 원칙을 고수한 이유는 분명했다. “법에 의해 특권을 받은 종교는 정치를 타락시킨다”는 이유였다. 역사와 경험을 통해 얻은 뼈아픈 결론이었으리라. 한편, 이것을 환영한 이들은 정치인들만이 아니었다. 당시 침례교와 퀘이커 교도들 같은 기독교인들 역시 정교분리의 원칙을 철저히 추구했다. “종교와 합해진 정치는 종교를 타락시킨다”는 이유였다. 이 또한, 중세의 거친 역사를 통과하며 믿음의 사람들이 얻은 중요한 교훈이었다.

기독교인이 정치적 활동을 할 수도 있다. 목사나 교회가 정치인들의 불의한 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 혹은 반대하는 등, 현실 정치에 직접 개입을 하는 일은 위험하다. 제 살 깎아 먹는 행위다. 그것을 ‘종교 자유’라고 믿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그 떡밥을 먹는 순간, 교회에 대한 정부의 개입 역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와 정치의 결탁이 양쪽 모두를 타락시키는 이유이다.

멀리 한국 사회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이 암울하다. 소위 ‘조국 사태’로 인해 나라가 양 진영으로 나뉘어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왜 거기에 목사가 마이크를 잡는가. 왜 목사 가운을 입고 하야를 외치는가. 왜 교인들을 동원하는가. 왜 성도들의 헌금 ‘처분 권한’이 그 목사에게 돌아가는가. 대체 왜 “주의 보혈 그 어린 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찬송을 거기서 부르는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어린 양의 보혈이 정권 퇴진을 위한 것이었단 말인가.

‘조국 반대’를 외치고 싶으면 하라. 현 정권 퇴진 운동하고 싶으면 말리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끼워 넣지 마시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타락시키는 일이다. 복음과 이념을 뒤섞는 참담한 일을 중단하라. 주의 보혈을 정치적 목적으로 쓰는 신성모독을 멈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