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기도문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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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주 기도문 중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 말씀은 기도할 때 우리가 갖추어야 할 나머지 영적 태도를 가르쳐줍니다.

하나는 겸손함 입니다. ‘거룩하다’는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름이 거룩하다는 표현은 피조물과 구별되는 창조주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바꿔 말하면,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함을 갖추고 기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겸손한 태도를 강조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57장 15절 말씀을 보니, 하나님께서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한다.”고 선포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교제 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자리에 하나님도 함께 계셔야 완전한 기도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자는 겸손해야 하는 겁니다.

민수기 12장은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한 일을 꾸짖는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선 모세를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겸손한 자)라고 평하신 후,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과 꿈을 통해 말하시지만, 모세와는 직접 대면해서 명백히 말을 한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리더로 택하신 이유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겸손함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모세는 40년에 걸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동안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했고, 하나님께선 모세가 겸손히 무릎꿇고 기도할 때마다 다 응답해주셨습니다. 모세처럼 겸손함을 갖추고 기도함으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자가 갖추어야 할 마지막 영적 태도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담겨 있습니다. 기도자들은 그 하나님의 성품들이 거룩하다는 사실, 피조물들의 성품과는 구별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인정하는 태도가 바로 믿음입니다. 어린 자녀가 무슨 문제만 생기면 도와 달라고 아버지에게 달려오는 이유가 뭐죠? 아버지를 수퍼맨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다 알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하나님을 향한 이런 믿음인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셋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고 안 계실 때, 한 아버지가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남아 있는 제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제자들은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고, 아들의 아버지는 주님 앞에 달려가 간청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소서.” 그러자 주님께서 아버지를 꾸짖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그러자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며 애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상황이 종료되었을 때, 제자들은 주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왜 우리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선 제자들이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아들의 아버지도 믿음이 부족했고, 제자들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시편139:1-4, 이사야46:10, 히브리서4:13) 전능하십니다. (창세기18:14, 예레미야32:17, 계시록4:8) 하신 말씀을 다 이루십니다. (민수기23:19, 이사야55:11, 히브리서6:17). 사랑이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3:16, 로마서5:8, 로마서8:32). 이 성품들을 믿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