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님의 선택과 축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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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지닌 주님께 빌라도 총독의 변호는 마지막 유혹이었을 겁니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두려움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라는 책은 모든 면에서 미래가 보장된 신경외과 레지던트 폴 칼라니티가 36살에 폐암 선고를 받고 하나님 품에 안길 때까지 2년의 시간을 기록한 책입니다. 멈춤의 시간을 알고 자신의 삶을 진지하고 긍정적으로 성찰해낸 폴의 글은 슬픔 보다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합니다. 의학도가 되기 전 영문학으로 석사 학위까지 받은 그의 특별한 이력이 더해져서 그의 글은 참 수려합니다. 더우기 신앙인인 그가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그 짧은 시간들을 불평이 아닌 감사함으로 채워가는 삶의 모습들은 더욱 더 아름답습니다. 어느 날 옆에 누워 있던 아내 루시가 “지금 가장 두려운 건 뭐야.” 하고 묻자, 폴은 “당신과 해어지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신앙의 힘으로 고통을 이겨내던 폴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은 견디기 힘든 큰 고통이었던 겁니다. 이처럼 신앙인에게도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지닌 주님께도 죽음은 분명 두려운 대상이었을 겁니다. 감람산에서 십자가 죽음을 앞둔 주님의 심정을 제자들에게 이렇게 고백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구나.” 그러니 빌라도의 호의는 죽음을 앞둔 주님께 큰 유혹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께선 침묵을 택하셨습니다. 구원의 완성이라는 소명을 이루기 위해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습니다. 주님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된 겁니다.

믿음의 성도들은 매일 축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선택을 통해 우리에게 임한 구원 때문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축제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찾기가 쉽질 않습니다. 특히 고난의 시간을 지날 때 대부분의 성도들은 염려와 절망에 짓눌려 어둡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의 영혼은 어떤 상황도 초월하는 기쁨과 감사로 늘 넘실대야 합니다. 베드로가 편지에서 고백한 것처럼 시험이 닥치면 잠간 근심할 순 있지만, 금새 기쁨과 감사를 회복하는 삶이어야 하는 겁니다. 구원 받은 성도에게 있어야 할 이 기쁨과 감사함이 실감 되지 않는다면, 예수님 대신 풀려난 바라바의 마음을 그려보면 됩니다.

지금부터 바라바가 ‘나’ 자신이라 생각하고 말씀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지금 나는 감옥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마 정부에 대항하고 로마 군인을 죽였으니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십자가 형틀입니다. 절기가 되면 죄수를 사면해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내 경우는 지은 죄의 크기 때문에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민족을 위해 각오하고 한 일이지만, 실제 죽음 앞에 서니 절망 때문에 숨이 콱콱 막혀옵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혀 수 시간을 고생하다가 죽어야 하는 끔찍한 형벌을 생각할 때면 절대의 절망이 내 뼈마디를 녹여냅니다. 그런데 갑자기 감옥 문이 열리더니 간수가 이제부터 넌 자유의 몸이라고 합니다. 믿기지가 않습니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감옥을 나서 길에 나와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고 나서야 진짜 살아났다는 것이 체감 됩니다. 가슴을 꽉 채운 기쁨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한바탕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가슴을 채운 감정은 기쁨만이 아닙니다. 내게 다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함 때문에 터질 것같습니다. 사망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 우리의 기쁨과 감사도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어야 합니다.

바라바를 통해 성도의 삶에 있어야 할 기쁨과 감사의 크기를 재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에선 기쁨과 감사가 매일매일 넘쳐나야 하는 겁니다. 또한 이 기쁨과 감사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 매순간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참예배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의 삶은 축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