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죽으면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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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수
레익뷰언약교회 담임목사(시카고)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 3:10-11)

1987년도에 신학교에 입학하여 제가 처음으로 섬긴 교회는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베렌도 침례교회였는데 제자훈련에 열심이셨던 김동명목사님과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인 안이숙사모님이 사역 하시던 때였습니다. 안이숙사모님은 1939년 평북 보성여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중 전교생 신사참배 시간에 믿음의 절개를 지키며 신사참배를 거부한 죄로 일본군에게 쫒기게 되었으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 다음 해인 1940년 일본으로 건너가 위정자들과 장관들을 만나 그들의 한국 기독교 박해를 정식으로 항의했으며 또한 74회 일본제국회의 때 의사당에서 ‘일본은 유황불로 망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선포한 후 평양형무소에서 6년간 옥고를 치루셨습니다. 감옥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여러 죄수들과 간수들에게 복음을 전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죽으면 죽으리라’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이 어린 처녀의 몸으로 일본제국 정치인들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요? 그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으면 영원히 살리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습니다. 안이숙사모님이 그의 두번째 저서의 제목을 ‘죽으면 살리라’로 정하신 것도 바로 그의 부활신앙이 핍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의 삶을 가능케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과 11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기 위해 그의 죽으심을 본 받는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부활을 경험하기 위해 먼저 죽겠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 이유는 우리가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고 난 후에야 부활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고전 15:31) 고백하였고 날마다 그리스도를 위해 죽으므로 날마다 그의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는 승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부활의 권능’에서 ‘권능’이라는 단어는 현대어에서 ‘다이나마이트’로 번역된 ‘폭발적인 힘과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나의 옛사람과 잘못된 성질을 죽일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주시는 승리의 삶을, 그리고 장차 죽음에서 부활하는 놀라운 영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활의 영광을 원하지만 죽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부활의 권능’은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사람들만 경험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신 영화로운 부활의 삶을 바라보시면서 오늘도 나의 교만과 정욕과 세상욕심들을 죽이시므로 담대하게 이 세상을 이기며 사시는 복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