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초대교회로 돌아가자구요? 큰일 날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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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원 목사(시카고언약장로교회 담임)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된다’는 주장이다. ‘초대교회’라는 용어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시작된 ‘초기 기독교’(Early Christianity)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염두에 둔 모습은 사도행전 2:42-47이다.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고 한 마음이 되어 서로 사랑하며 어려운 사정에 놓인 교우들을 잘 도우며 지역사회에서 칭찬이 자자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나는 아름다운 부흥이 있었다. 이것은 본 받아야 한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6장에 가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해관계 싸움의 심각한 갈등의 장이 된다. 그리스어가 주 언어인 사람들과 아람어가 주 언어였던 교인들 사이에 사랑의 기부를 나눠 갖는 일에 있어 공정성에 대한 불만의 공격이 지나쳐 말씀과 기도 자체가 중단되었던 모양이다(행 6:2). 비유대인 신자들의 할례 이슈로 신학적 논쟁이 격화되어 ‘다툼과 변론’ 때문에 공동체 자체가 와해되어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소위 최초의 종교회의가 열리기도 했다(행 15:1-31). 이곳 율법주의자들이 야고보의 이름을 등에 업고 복음을 훼방하며 내내 바울과 교회들을 괴롭혔다(갈 2:12). 본 받으면 안 된다.

정말 기가 막힌 경우는 고린도 교회였다. 몇 안 되는 교인들이 사분오열로 찢어져 있었다(고전 1:11-13).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살림을 차리고 살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교인이 있었다 한다(5:1). 아마 자기 계모와 눈이 맞았던 모양이다. 잘 사는 교인이 가난한 교인의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뇌물 먹고 굽은 재판을 하는 이교도 판사에게 끌고 가 소송전을 벌이는 야비함도 목격되었다(6:1). 아내가 있는 남자들이 공공연하게 신전 창녀들과 몸을 섞으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6:15-20). 성찬식 때 어떤 이들은 포도주에 취해 해롱거리고 또 한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배를 곯았다 한다(11:17-22).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짓들을 본받으면 큰 일이다. 편지를 받은 다른 교회들도 비슷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단면들이었다. 이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베이비 교회들이었다.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으나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제대로 알 지 못해 가르치고 또 가르치기 위해 멀리서 교육용 편지를 인편으로 보내 읽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신약성경 27권의 책 중에서 22권이 이런 성격의 편지들이었다. 그러니 이런 초대교회를 본받자고 하면 어쩌나… 잘 생각해서 해야 말 주장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사람들을 놓고 ‘하나님의 교회’라 했고(고전 1:2),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라 했다. 사실은 이것이 교회다. 처음부터 그랬다. 교회는 흠 없는 도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아서 겸손하게 조물주와 구세주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받고 용서하면서 서로 사랑하기를 배우는 천국의 훈련장이 교회였고 지금도 그렇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면서 동시에 용서받아야 하는 죄인들이 모인 사회학적 인간집단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래서 교회다. 주님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초대교회의 제도나 생활 방식이 아니라, 그 문제의 사람들이 구원의 길로 알아 따르려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 때 아마 맞는 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