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19와 광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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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정지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왕래도 없고, 거의 모든 비지니스들은 기약 없는 휴업에 들어 갔으며, 삶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만이 허락된 요즈음 우리는 마치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머무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할까요?

첫째로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전 광야의 시간을 경험하셨습니다. 40일 동안 광야에서의 영적고독을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교재를 마치셨을 때 그분의 심령을 가득 채운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척박한 광야에서 음식도 드시지 못하여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사단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이런 저런 말로 시험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한결 같이 이러한 말로 그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마 4:4, 7, 10) 고되고 힘들었던 광야의 시간을 통하여 그분을 강하게 하고 능력있게 하고 시험을 이기게 하였던 힘의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말씀의 힘으로 사단을 물리치셨습니다. 오늘 마치 40일 광야의 시간을 보내었던 것 처럼 코로나19로 인한 영적 광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첫번째 일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바쁜 일상과 비즈니스의 핑계로 미뤄두었던 성경 통독을 다시 시작합시다. 매일 시간을 정하여 생명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이 우리의 삶에서 회복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더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은 우리의 품성과 생애를 더욱 고상하게 해 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매일 새벽 미명에 기도하는 시간을 통하여 매일의 삶을 살아갈 하늘의 능력을 얻었던 것 처럼 우리도 이 시간들을 통하여 우리의 삶에 기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요즈음 처럼 조용한 시간,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시간, 분주한 일상의 부담이 없는 시간, 해야 할 업무의 압박이 없는 시간, 광야에서의 영적 고독은 우리에게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는 영적 유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홀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더욱 주님과 친밀한 교재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님과의 동행을 더욱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택대피령이 내려졌습니다. 자택 대피령의 집행을 강화하기 위해 벌금을 부여하거나 소환장을 발부 하기도 합니다. 급기야 시카고지역 모든 공원과 비치와 트레일은 클로즈 되었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나와서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을 완전 봉쇄하기 위한 극단의 조치입니다. 이에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서로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성도들도 만나지 못합니다. 바로 이럴 때에 우리가 정말 만나야 하고 함께 동행해야 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은 하늘로 가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였습니다(요 14:16). 희랍어 ‘파라클레토스’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보혜사(保惠師)’인데 그 의미가 매우 넓고 깊어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즉 ‘안위한다’는 뜻 뿐만이 아니라 ‘훈계한다’, ‘권고한다’, ‘격려한다’, ‘도와 준다’는 뜻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를 번역함에 있어 각 민족과 언어마다 다르게 표현한다고 합니다. 필리핀 남부의 쫄로아노모로족은 “계속하여 옆에 서서 같이 가시는 분”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성령님이야말로 우리와 항상 같이하시는 동반자이심을 강조한 번역입니다. 중앙 멕시코의 오토미 인디언 그리스도인들은 보혜사를 “우리 영혼에 따스함을 주시는 분”이라고 표현하여 죄와 세상의 염려 속에서 허덕이는 영혼을 위로하시는 성령님 따스함을 나타내었습니다. 아이보리코스트에 사는 빠울리족 그리스도인들은 보혜사를 “생각을 꽉 동여매시는 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온갖 근심과 염려로 우리들의 마음이 사방으로 흐트러질 때 보혜사께서 우리의 흐트러진 마음을 꽉 동여매여 성령님의 은혜로 묶어 두심을 표현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들입니까? 요즘과 같은 때에 우리는 더욱 더 성령님을 구하고 그분과의 동행을 가까이 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광야의 시간, 우리는 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깊은 묵상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그리고 성령님과의 동행이 함께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