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풍성한 삶(Abound & Abide)

1578

이상기 목사(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육군 군목)

 

간혹 함께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부터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은, “내 인생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입니다. 특별히 힘겹게 삶을 살아가는 이들로부터 듣게되는 고백은 “도대체 난 왜 이렇게 사는질 모르겠어요!”라는 깊은 절망과 후회로 가득한 안타까운 말입니다. 이같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인생이란 ‘풍성한 열매를 맺기위함’(Abound)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물론 풍성함이라고 말하면 당장 떠오르는 우리가 가진 이미지는 지극히 물질적이며 세속적인 것들 뿐입니다.  크고 비싼 집에 사는 것, 일을 안해도 살만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 계절따라 세계를 여행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생각만해도 이들은 입이 딱 벌어질 부러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인생이란 자원하여 섬기는 삶을 사는 것, 희생을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며 사는 삶,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돌봄을 베풀 수 있는 자세, 그래서 그 삶이 주변에 아름다운 영향을 계속하여 드러나게하는 삶,…이와같은 것들을 풍성한 삶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재산과 지위에서 오는 외부적인 풍성함이 아니라, 인격과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인생에 대한 사랑과 감사로 채워진 풍요로움입니다. 세상을 살펴보면 부자가 가장 가난하게 사는 경우도 종종 보게됩니다. 그들은 도움의 손을 내밀 줄도,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줄도, 베품의 행복을 느낄 줄도 모르는 참으로 가난한 부자들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영혼의 풍요로움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가르켜 성경은 마치 참포도나무에 열린 풍성한 열매로자란 포도송이와 같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마치 농부가 포도나무의 곁가지를 다듬으며, 오랜 기간을 기다려 풍성히 자란 포도송이의 황홀한 향기와 맛에 취하듯, 우리 인생의 목적이란 맛과 향기가 어우러진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풍성한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생명의 근원인 예수님안에 거하는 것은 마치 생명의 젖줄에 붙어있는 것(Abide)과 같음을 성경은 말씀해 줍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길,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셨습니다. (요15:1-8) 곧,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와 같이, 풍요로운 인생의 열매는 생명의 근원인 예수님과의 신뢰와 사랑의 친밀한 관계를 맺을 때만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인생은 전적으로 생명의 근원인 주님께 의존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포도가지가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그것이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아무 열매를 맺을 수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 인생이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하며, 그는 자신의 죄악과 무기력함을 이렇게 고백하듯 말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잇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7:18) 곧, 자신속엔 인생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많한 어떤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For I know that nothing good dwells in me.) 그러므로 주님과의 건강하고 친밀한 관계안에 머물고자하는 절박한 믿음과 간절함을 가져야 합니다. 이같은 신앙고백과 순종의 믿음은 우리의 인생에 풍성한 열매를 맺게하는 중요한 요소가 됨을 알게 됩니다. 포도나무를 보면 가지에 덩쿨손이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용수철같이 감겨진 덩쿨손은 포도나무에 매달려 땅바닦에 주저앉는 포도송이를 붙잡아 공기를 마시고, 햇빛을 볼 수 있도록 포도가지를 지탱시켜 준다고 합니다. 간혹 우리도 가지에 붙은 덩쿨손과 같이 참 포도나무되신 주님께 간곡히 매달리는 믿음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주님안에 머물때 (Abide)만이, 우리는 풍성한 열매 맺게되기(Abound) 때문입니다. Servant.s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