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핍박을 받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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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예수님께서 갈릴리 작은 언덕에서 선포하신 은혜의 왕국. 그 왕국의 백성들이 가지고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가치관.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팔복의 여덟 가지 삶의 자세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여덟 가지 삶의 원리들이 무엇이었습니까?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며, 화평하는 자로 살며 그리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삶의 자세. 그런데 팔복을 세상의 눈으로 보면 진정한 복이라 할 수 있을까요? 세상 기준으로 볼 때, 세상의 가치관으로 판단할 때 이런 사람들은 바보 같고 빼앗기는 사람들이지 결코 행복한 사람들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무엇이 세상에서 제일 좋습니까? 무엇으로 행복해 합니까? 무엇을 자랑합니까? 이 모든 질문은 우리의 가치관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명예가 가치인 사람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가치이 사람도 있고 권력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돈과 재물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합니다. 이들은 돈이 가치관인지라 돈 때문에 신의를 져 버리고 돈 때문에 거짓을 말하며 진실을 잃어 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관은 어떠해야 합니까?

팔복의 여덟 가지 복중에 마지막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마 5:10). 지금껏 일곱 가지의 복들이 모두 세상의 가치와는 상반되는 것들이었지만 특별히 여덟 번째 복은 역설 중의 역설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면 삶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고 하는 일이 형통하고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큰 영광과 명예는 아닐지라도, 삶의 안전과 안정, 성공과 평안에 대해 기대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는 정 반대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이란 꽃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세상의 영광과 부를 얻고 시련이 없는 생애를 맞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하시는 대신에, 주님과 함께 극기와 굴욕의 길을 걷는 특권을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 극기와 굴욕의 길, 그 고난의 길이 우리에게 특권이 되신다는 말씀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괴롭힘과 학대를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의를 위한 박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기를 거부한 일로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확장을 위해 진력하다가 고초를 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명예가 실추되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통제를 받는 것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국을 위해 세상을 포기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모든 종류의 박해가 이 범주에 포함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박해는 이미 성경에서 우리들에게 알려준 바 된 일입니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환란을 당한 것이라(요 1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떠한 가치관의 충돌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무엇을 손해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불이익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코 꽃 길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 부딪히며 투쟁하며 살아야 하고 그래서 이 세상의 거친 저항과 반대와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세상의 가치와 충돌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 말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세상을 이미 이기신 주님께서 우리를 이 환란과 박해와 억울함에서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