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나님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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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목사 (선한 이웃 교회 담임/ 미 육군 군목)

코로나 사태이후 바빠진 곳이 하나 있다면 도시 주변의 산책로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말마다 시카고 인근의 산책로를 찾아 걷다 보면 이렇게 다양하고 멋진 트레일 코스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트레일길은 잘 포장되어 있는 메인길도 있지만, 숲속으로 이어지는 자연속 흙길 코스도 있습니다. 아마 혼자서라면 메인길로만 다니겠지만, 아내와 함께 걷게 되면 종종 사람들이 많이 가지않는 흙길로도 걷게 됩니다. 이 자연의 숲속에서 다양한 식물들과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변한 황홀한 가을 길을 맛보게 됩니다. 지금껏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도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면 걸어볼 용기와 담력이 생기게 됩니다. 아마도 광야길을 걷게 된 모세에게도 그 같은 경험이 있었던 듯합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황량한 광야길을 걸어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그 길을 찾아가야 할지 두렵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눈물로 이같이 호소하였습니다: “주여, 걸어 가야할 길을 보여주옵소서!” “나와 함께할 누군가를 보내주옵소서!” 그리고 “주님의 얼굴을 보여주옵소서.” (출33:12-23) 이 같은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해 주십니다: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 (33:14) 어떤 길을 걸어 가야할 지, 누가 함께 도와줄 지, 그 여정이 얼마나 걸리게 될 지,… 이런 모든 의문들엔 응답함없이, 한 가지 분명한 사실만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이 그 여정에 친히 동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면 족하다는 말씀입니다.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낯선 광야의 여정도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동행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에겐 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바짝 하나님을 붙잡고 또다시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주소서!” 위대한 설교자 스퍼젼은 이 같은 모세의 모습은 마치 변화산에서 예수님을 향해 엉뚱한 요청을 하던 베드로로의 모습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마치 자신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변모하신 예수님과 그 영광속에 영원히 함께 머물기를 요청하였던 것입니다.(눅9:33) 하나님의 얼굴 보기를 구하는 모세 역시 아직도 그 기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33:20)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을 쳐다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이땅에 있을까요? 아마도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도 모르고 믿는 종교가 역설적이지만 기독교 신앙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쳐다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얼굴앞에서 우리 자신의 진짜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사야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앞에서 자신 스스로의 부정함을 발견하고 이렇게 외쳤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5) 다메섹 길을 가던 사도 바울도 광야에서 자신에게 비치는 하늘의 광채를 보고 눈이 멀었습니다. 해보다도 더 밝은 하나님의 광채속에서 그는 자신의 죄악과 교만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된 것입니다. (행22) 이 땅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나님은 단지 부분적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뒷모습 뿐인 것입니다. 마치 구리거울에 비쳐진 형상처럼 희미하게 하나님을 경험할 뿐입니다. 그 하나님의 뒷모습을 우리는 우리의 일상속에도 언뜻 경험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속에서도 우리는 주님의 위대함을 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 가운데에서도 어렴풋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버지의 깊게 패인 주름살을 보면서도,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끝을 만지 면서도 그곳에 하나님의 자비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인생의 광야길도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시며,“내가 친히 너희와 함께 가리라!” 말씀하시는 주님이 있기에 담대하게 걸어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새힘을 얻게되는 것은 우리 삶속에 불현듯 찾아와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뒷모습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언제나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