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박국의 신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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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무려 4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풀려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윌버트 존스. 1971년 루이지내아주 배턴루지에서 발생한 강간 사건에 연루된 그는 가중 강간 혐의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를 받고 2017년 11월 15일 무죄 판결을 받을 때 까지 45년간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갈 당시 20세의 젊은 청년은 65세의 노인이 되어서야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몇 년 전 통계이기는 하지만 미국에서 지난 23년동안 이렇게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이 2,0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가 되었습니다. 평균 1년에 100명 정도가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서 복역하다가 뒤늦게 무죄로 확인되어 풀려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사람들 10명 중 9명이 흑인인 것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역시 이곳에서도 인종의 차별이 심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이 됩니다. 더구나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일어난 지금의 사회 현상을 보면서 불평등과 억압, 그리고 억울함이 넘치는 세상임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했던 당시도 이러한 억울함과 불공평이 편만한 세상이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타락한 유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한탄합니다. 힘있는 자들이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겁탈하고 온각 악함과 패역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음을 매우 강한 목소리로 언급하며 마침내 율법과 공의가 완전히 사라졌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합 1:3-4).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가 더욱 화가 난 것은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대 왜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가에 대한 답답함이었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합 1:13) 하박국 1장 전체를 통하여 선지자가 하나님께 던진 질문의 내용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 이 억울한 세상을 왜 가만히 보고만 계십니까?”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합 2:1~3) 묵시는 정한 때가 있는데 그 종말이 속히 이를 것이라 비록 너의 눈에 더디고 지체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반드시 응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아라. 지금 하박국은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억울해서 못 살겠습니다. 지금 좀 어떻게 해 보세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시점은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말론적 관점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셨고 대답하셨습니다. 정한 때 곧 말세의 때가 되면 이 모든 일에 대한 보응을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며 2장 전체에서 강포를 행한 자들, 우상을 섬긴자들,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한 자들에 대한 심판의 기별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억울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권면은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아이고 하나님~ 언제까지 기다립니까. 종말의 때까지, 세상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까지 이 억울하고 힘든 세상을 참고 살아야 합니까?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나 행동 때문에 오해도 받고, 다른 이들의 비난을 받고, 나를 비방하고 공격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지금 이 말씀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하박국 3장은 2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대답을 들은 선지자의 반응과 기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3장 1절의 서두에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쉬그노요트’라는 말은 히브리인들의 전통 음악의 한 형태로서 아주 빠른 리듬과 열정적인 음악의 형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엇인가? 지금 하박국은 하나님의 대답을 듣고 아주 신바람이 났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신나고 빠른 박자로 기도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그 종말의 때의 심판이 너무도 좋아서, 이 세상 살면서 무시당하고, 오해 받고, 속상하고, 대접받지 못하고 속임당했던 그 모든 억울한 일들을 하나님이 다 갚아 주시겠다는 말에 그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의 신나는 기도는 이렇게 끝을 맺게 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합 3:17~19)

혹 마음을 속상하게 하고 억울하게 하는 어떤 일이 있다면 하박국의 신나는 기도의 노래를 묵상합시다. 하박국의 기쁨과 그의 신나는 노래가 나의 노래가 되어야 합니다. 하박국이 바라보았으며 기대했고 또 기다렸던 그의 기쁨의 인내가 나의 신나는 노래가 되고 나의 기도가 되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