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 이야기: 존 W. 헤론(John W. Heron)

2958

김영문 목사(시카고 나눔교회 담임)

선교는 하나님이 주도하므로 성령을 통하여 지금도 계속하여 교회를 부르시고 세상으로 보내신다. 교회는 자신의 선교보다 먼저 일하는 하나님 선교에 참여 하도록 부름을 받아 선교적 소명을 가져야 할것이다. 그 대표적 인물이 존 헤론(John W. Heron)이다. 그는 1856년 6월 15일 영국에서 태어난 1.5세로 목회하는 아버지를 따라 14세때 미국 테네시 주 녹스빌로 이민 와서 정착하게 된다. 당시 헤론은 이민자로 테네시주 메리빌 대학과 뉴욕 종합대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이민 11년만에 종합대학 의과대학 개교이래 최우수 성적을 얻게 되었다. 모교에서는 후배 양성(의사)을 위해 의과 교수로 초빙을 제안 받았다. 장래가 보장된 길이지만 병들어 죽어가는 가난한 나라에 가서 생명을 살리는 운동을 해야 한다며 미 북장로교 선교부를 방문해 한국 의료선교사로 지원했다.

1884년 4월 헤론 부부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한국 선교사로 최초로 선교사 임명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갑신정변이 일어났다는 선교부의 편지를 받고, 일본에서 조선말을 배우며 준비하고 있다가 1885년 6월 21일, 27살의 나이로 조선 땅에 입국하게 된다. 1884년 중국 선교사 사역을 하다가 한국으로 온 알렌 선교사나 언더우드보다 두달 늦게 한국에 도착하여 그들과 합류하게 된다.

헤론이 한국 선교사로 헌신한 여러 영향들이 있다. 일본에서 보내온 이수정의 편지 내용이 실린 선교잡지를 읽으면서 크게 감동을 받았다. “미국 사람들이여!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주시오! 조선 백성들은 문명을 모르고 어둠 속 깊은 잠에 빠져 있습니다.” 이에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가슴깊이 새기며 그는 조선을 향한 선교자의 사명감에 사로 잡혔다. 그외에도 일본주재 녹스 선교사 편지를 통해 일본에 있는 조선 유학생들이 세례를 받고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조선땅에는 의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된다. 또한 길버트 리이드 선교사 편지를 통하여 조선에는 교사와 의사가 들어가서 영어를 가르치며 각종 약품과 의료기를 가져와서 선교사업을 할 사람을 파송해달라는 글을 통해 한국 선교에 확신을 갖게되었다.

헤롯의 주된 사역은 의료 활동이다. 알렌 후임으로 1887년9월에 왕립기관인 제중원에 2대원장 겸 고종의 시의로 임명을 받았다. 그의 뛰어난 의술은 조정에서도 신임을 얻게되어 종 이품의 높은 벼슬도 받게 되었다. 제중원은 양반층은 주로 왕진을 요청 했으며, 지방에서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들도 적지 않아 개원 이래 첫 1년 동안 10,46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고 한다. 환자들은 대부분 질환이 말라리아가 가장 많았고, 그외에 소화 불량, 각종 피부병, 성병(매독). 결핵, 나병, 기생충병, 각기병 등이 있었다

병원사역 외에도 성서번역에 참여 하며 기독교 출판 사업인 ‘조선성교서회(현재 대한 기독교 서회)의 창설을 기획하여 문서선교의 출발이요 후일 한국선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헤론은 의료·교육·전도·문서·여성 등 다섯 가지 분야가 함께 움직이는 ‘통합적 선교 신학’을 갖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힘썼다. 그의 열정과 헌신은 한국인들과 내한 선교사들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헤론은 동료들에게 따뜻하고 우정이 넘치며 보수적인 엄격한 도덕주의자였다고 한다. 본국에 보낸 서신에 단순히 자신의 의학 기술을 시행하는 데에 있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열망하며 위대한 의사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의 인생은 이민자의 삶이었다. 영국에서 15년, 미국에서 15년등 낯선 타문화권의 경험이 국제적 감각을 가지고 선교사로서 한국에서 5년의 삶이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진료 가방을 챙겨들고 100리이상 떨어진 시골지역을 다니며 전염병을 치료했던 헤론 자신도 결국 전염병 때문에 쓰러졌다. 헤론은 자기가 이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하고 1890년 7월 26일에, 자신의 병원인 제중원에서 부인과 두 딸을 남겨 놓은 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별세했다. 그의 죽음은 한국인 환자도 울고, 동료 선교사들도 울었으며, 그를 알고 있는 정부 고관들도 울고 말았다. 가난한 환자를 진료하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열정은 어느 누구도 따라갈수 없었다. 죽기전 유언처럼 남긴 한마디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위해 그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The son of God loved me and gave himself for me)”고 적혀있다.

(참고도서: 미국 북장로교 한국교회사, 선교적 교회의 이론과 실제, 헤론 의사의 선교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