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형제 되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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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네 이 말은 허균의 홍길동전이라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말입니다. 왜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습니까? 홍길동은 서자로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한 이유입니다. 서자는 자식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서자는 아무리 비범한 재주와 능력을 타고 났어도 출사하지 못합니다. 그저 세상을 등지고 사람이 아닌 것처럼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 신세, 그것이 서자의 아픔이고 그 출신 그에게 벗어날 수 없는 원죄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처지가 어떠합니까? 우리는 죄악 중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사도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자책했습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나에게 아버지가 있는데 너희도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거라(마 6:9). 이 말은 그는 우리의 형제가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우리를 형제와 자매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출신이 죄인 중에 괴수로 태어난 자들 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당신의 가족으로 함께 하시고픈 마음이 강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사용해야 하는 첫 번째 말로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이 주기도문의 가르침 속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랑하신다는, 용기와 위로로 가득 찬 놀라운 진리의 선언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한 당신의 마지막 기도에서 다시 한번 나타나는데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3)

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린 기사 한 무슬림 여성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 개종한 이 여인은 현재 엘람 미니스트리즈(Elam Mininstries)를 섬기고 있는 리더 중 한 명으로서 여성들을 위한 사역 프로그램을 통해 페르시아어권 여성들을 제자화 하는 일을 하고 습니다. 그녀를 소개하는 기사에는 그녀의 간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섯명의 자녀를 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어떠한 사랑도 받아 보질 못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가정폭력에 시달렸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했습니다. 이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성인이 된 이후에 그녀의 고향, 이란을 떠나 영국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러던 그녀가 교회를 가게 되었는데 그 교회에서는 자신의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항상 이해하지도 못하는 아랍어로 알라께 기도해야 하는 것이 의문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언어로 예배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에 발을 내딛게 된 그녀 그러나 그녀에게 큰 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영접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단어는 존경스러운 말이 아니었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무서운 폭력과 학대 그리고 공포였기 때문에 아버지는 사랑할 수 있는 존재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성경을 공부하고 깊이 하나님을 묵상하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신이 알아왔고 자신이 경험했던 아버지와 하늘의 아버지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이슬람 경전에는 알라의 이름이 아흔 아홉개나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아버지’란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예수님을 만난 이 후에 하나님을 자신의 하늘 아버지로 받아 들이게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 오늘 주님께서 그 귀한 자리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