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홀로 있기의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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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드로아에서의 사역을 다 마친 바울과 일행은 앗소를 향해 출발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행들은 다 배를 탔는데, 바울만 걸어서 갑니다. 바울은 매우 피곤한 상태였습니다. 전날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드로아 성도들에게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게다가 청년 유두고가 죽었다 살아나는 사건도 겪었습니다. 이런 큰 사건을 겪으면 그 충격으로 영과 육이 다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바울은 피곤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구지 도보행을 택한 겁니다. 드로아에서 앗소까지는 약 20마일, 천천히 쉬지 않고 걸으면 약 예닐곱 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배를 타면 편하고 잠시 눈도 붙일 수 있었을 겁니다. 바울은 혼자 있고 싶었던 겁니다. 홀로 있기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 부담을 덜고 싶었던 겁니다.

바울이 품고 있던 부담 중 하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계획 입니다. 고린도에서 배를 타고 바울 선교의 전초 기지인 안디옥 교회로 바로 갔다가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는 원래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전혀 계획에 없던 드로아를 방문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도보행, 즉 홀로 있기를 택한 겁니다. 또 다른 부담은 두렵거나 불편한 감정이었을 겁니다. 에베소 사역을 끝내고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로 가라고 하신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결박과 환난을 겪게 될 거라고 계속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울도 인간입니다. 성령님의 말씀이 부담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영적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 홀로 있기를 택한 겁니다. 바울은 이 홀로 있기를 통해 이 두 가지 부담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있기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열 두 제자를 택할 때, 주님은 혼자 산에 오르셨습니다. 아무도 없고, 모든 사역에서 단절된 그곳에서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안 아버지의 뜻을 물으신 겁니다. 그후 제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바로 앞에 둔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 깊은 곳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당신의 마음을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표현하실 정도였습니다. 주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홀로 동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신 겁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십자가 소명을 앞두고 자신이 겪는 고통의 실체를 아버지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세요. 그러나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길 원합니다.” 홀로 있는 시간, 3 번의 기도를 통해 주님은 죽음의 불안을 극복하고 십자가를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실 수 있었습니다.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있나요? 두려움과 절망이 영혼을 짓누르는 그런 상황을 힘들게 견뎌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홀로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택해 그곳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런후 고요함과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그곳으로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심령으로 믿음과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를 갈급하게 기다릴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선 반드시 그 자리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동원해 당신 뜻대로 우리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해주실 겁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 하나님과 단 둘이 있는 시간으로 승화될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모두가 홀로 있기를 통해 이 거룩하고 신비하고 황홀한 순간을 체험하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시편 46편 10절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