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반주자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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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희(인디애나 음대 반주과 객원교수)

흔히 반주라고 하면 노래나 악기를 도와 주는 보조적인 역할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절대 없어서는 안되는,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피아노를 치면 무조건 반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직업이 그렇듯 음악에서도 세분화되어 반주자는 어엿한 하나의 직업이다. 과거에는 유명한 솔로 피아니스트가 반주자로서도 인정받고 대우받았지만, 지금은 반주자는 솔로 피아니스트와 다른 하나의 또 다른 직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예전에는 accompanist라는 표현을 썼지만 현재는 collaborative pianist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주자도 세분화되어 기악 반주, 성악 반주, 오페라 코치 등으로 나뉜다. 피아노를 제외한 다른 모든 악기들이나 성악가들이 반주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수요가 상당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반세기 전부터 동부나 서부의 음대 규모가 큰 학교들이나 콘서바토리를 중심으로 반주 과정이 생겨났으며, 최근 10년 사이에 중부나 남부 대학들에서도 반주과가 많이 개설되었다. 한국에서도 최근 20년 사이에 많은 대학들에서 반주과를 개설하였다. 대부분의 대학들이 학사 과정이 아닌 석사나 박사 과정으로 반주과를 개설하였는데, 학부에서 피아노 연주를 전공하고 석사 과정으로, 더 나아가 박사 과정으로 반주를 공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요가 많아지면서 대학들에서도 반주과 교수나 staff collaborative pianist같은 직업들이 많이 생겨났다.

반주를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리허설을 하고 연주하게 되는데 상대방의 성격이나 음악적인 스타일로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서로 좋게 대화를 하고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음악을 만들어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악기를 하거나 노래를 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반주자가 모든 것을 맞춰 주길 원하고 때로는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한다. 연주하기 며칠 전에 악보를 주거나 갑자기 곡을 바꾸기도 하고, 곡의 조성을 바꾸거나, 리허설에 늦거나 취소하는 등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더러는 반주자를 동등한 관계가 아닌 마치 버튼을 누르면 반주가 흘러나오는 가라오케 취급을 하기도 한다. 몇 년 전에 여름 뮤직 페스티벌에서 바이올리니스트가 반주자를 ‘어이 피아노’ 라고 불러서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반대로 반주자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어이 바이올린’ 이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기분이 어떨까.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지 상하관계가 아닌데 말이다. 가라오케처럼 실제로 요즘에는 반주 부분만을 녹음해 놓은 앱이 있어서 그 앱에 맞춰서 연습이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마다 연주 템포가 다르고 하는 스타일이 다른데 작은 뉘앙스까지 맞출 수는 없고 반주 부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있다.

고객의 만족을 중요시하는 서비스업처럼 반주도 일종의 서비스업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마치 돈을 주고 반주자를 고용하는 관계처럼 되어버리는 것이 안타깝다.  반주자와 파트너는 누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닌 음악을 함께 만들어 가는 챔버 뮤직과 같은 맥락이다. 단순히 반주라는 인식 때문인지 연주 팜플렛이나 포스터에도 솔리스트의 이름만 있고 반주자의 이름이 없을 때가 있다. 모 대학의 반주과 교수님은 학교에 붙은 연주 포스터에 반주자의 이름이 없을 경우에 포스터에 직접 매직으로 반주자의 이름을 기입하고, 반주자가 솔리스트보다 더 많은 음표를 연주한다고 뼈 있는 농담을 써 놓기도 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누군가의 리싸이틀에서 반주를 하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집안에 큰 일이 있어도 반주자는 취소하지 못하고 연주를 해야만 할 때가 많다. 연주가 끝나고 모두가 솔리스트에게만 달려가 인사하고 반주자는 유령 인간처럼 취급되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다. 공연을 감상할 때 반주자에게도 관심을 갖고 박수를 보내주는 것이 어떨까. 그들은 화려한 무대 뒤에 숨어 있는 보석과도 같은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