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훌륭한 아버지에게서 왜 탕자가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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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한마음재림교회 서상규 목사

자녀교육에 대한 저명한 작가이자 유명 강사인 캐롤(Carol)은 그녀의 책 “Engaging Today’s Prodigal”(현대의 탕자 이끌기)에서 열 두명의 자녀를 가진 한 엄마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산드라였습니다. 산드라는 ‘완벽한 부모가 완벽한 자녀를 만든다’는 신념을 가진 엄마였습니다. 그녀는 그녀가 가진 신념대로 열 두명의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열 한명의 자녀들은 누가 보아도 아주 훌륭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산드라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열 두번째 아이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 동안 열 한 명의 자녀들을 양육하며 사용했던 방법들이 이 아이에게는 하나도 먹혀 들지 않았습니다. 열 두번째 아이는 그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매우 깊은 실망에 빠지게 되었고 마침내 이 문제를 가지고 상담을 하러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훌륭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는 목사님이나 장로님, 집사님의 자녀들이 신앙을 떠나 빗나간 방향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 신기해. 그 목사님은 훌륭하신데 자녀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또 부모의 입장에서 “제 아들이 우리 부부의 십자가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너무도 쉽게 그 부모들에게 책망이 담긴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고 부모들은 그들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산드라가 가지고 있던 “완벽한 부모가 완벽한 자녀를 만든다”라는 자녀양육관에 대한 왜곡된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부모에게서는 항상 완벽한 자녀들이 나옵니까? 그 부모의 믿음의 훌륭하면 언제나 그 자녀들의 믿음도 훌륭하게 됩니까? 이것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이것은 우리의 오해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나온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여러 믿음의 인물들이 자녀들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성공하지 못했던 경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약속된 아들이요 모리아 산에서 스스로를 묶어 아버지의 재단에 기꺼이 목숨을 버리려고 했던 위대한 인물 이삭.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다 믿음의 자손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대제사장이요 사사로 부르심을 받았던 엘리 제사장. 그의 아들 홈니와 비느하스는 아버지의 본을 따르지 않았고 결국 그 가정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행 16:23)이라고 까지 일컬어졌던 믿음의 사람 다윗. 그러나 그 아들들의 행태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어떻습니까? “완벽한 부모가 완벽한 자녀를 만든다”와 같은 신념이 성경에서 나온 것이라면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타락은 어떻게 설명되어 질 수 있겠습니까? 완벽 하신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고 양육 받은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의 첫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부모 역할의 무용론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부모의 모습과 그 역할이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좋은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 자녀들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는데 ‘완벽한 부모가 완벽한 자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도록 주신 ‘인간의 자유의지’ 즉 우리 자녀들의 자유 의지를 간과한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모습이 서로 똑같습니까? 한 배에서 나왔어도 왜 이리 다른지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하는 짓도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훌륭한 부모들의 좋은 부모 역할이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자녀들의 마음과 신앙을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에서 사랑 많고 어질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둘째 아들이 탕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우리 부모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완벽한 부모가 완벽한 자녀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완벽하지 못해서 나의 자녀가 신앙을 떠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자녀에 대한 짐을 우리보다 능력 많으신 하나님 앞에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