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흑암 속에서 빛을 내는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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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목사(두란노침례교회 담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셨을 때, 뜻밖의 인물들이 등장해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합니다 바로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였습니다.

요셉은 이 장면에서 딱 한 번 등장하지만 그가 남겨둔 영적 향기는 아주 강렬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예수님 살아 계실 때는 이 사실을 감추고 살던 사람입니다. 그의 신분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유대교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의 멤버였던 겁니다.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의 자리로 내몬 당사자가 공회원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제자라고 밝힌다면, 요셉은 사회적 지위 뿐 아니라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예수님께 올인할 정도로 헌신적인 제자는 아니었던 겁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 수난 때부터 믿음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공회가 예수님을 죄인으로 내몰 때 그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공회원 대부분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지극히 마땅하고 여기고 지켜볼 때,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당당히 드러낸 겁니다.

니고데모의 영적 이력도 비슷합니다. 요한복음 3장 말씀을 보면,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늦은 밤에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주님을 찾은 이유는 그의 신분 때문이었습니다. 그도 공회원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공회로부터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이날 밤 주님과 만나 대화를 나눈 후 그의 삶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에도 그가 등장하는데, 공회원들이 예수님을 비방하자 예수님을 변호합니다. 공회의 거친 분위기에 밀리고 말았지만, 그의 변화를 증명하기에 충분한 단서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주님의 제자라고 선포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일까요?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를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나 요셉은 다 구약에 능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니고데모와의 첫 만남에서 이 사실을 금방 알아보신 주님은 그에게 천국 복음을 아주 진지하고 상세하게 전해 주셨습니다. 복음의 핵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이 말씀도 이때 주셨습니다. 그날 밤엔 주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해가 되고 결국 믿음이 생긴 겁니다.

히브리서 4장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서 날카로운 칼처럼 사람의 혼과 영과 골수와 관절을 쪼개어 변화를 낳습니다. 성도들은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고, 그 변화된 모습으로 하나님의 일을 온전하게 감당하는 참제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확실히 믿게 된 두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믿는 대로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는 겁니다.

야고보서 2장의 말씀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겁니다. 며칠 전 크리스천이 미국에서 마이너리티가 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크리스천의 인구 비율이 47%로 추락한 겁니다. 이 시대 교회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행함이 없는 믿음 때문입니다. 500년 전 종교 개혁을 통해 모든 성도들이 성경을 손에 들고 자신의 언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젠 읽고 묵상한 말씀을 그대로 살아내는 개혁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시카고의 성도들이 이 개혁의 전선에 앞장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 어둡고 썩어가는 세상 속에서 빛을 내고 짠맛을 내는 참제자들이 되길 바랍니다.